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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보고서

안학궁터 발굴의 나날을 더듬어 보며

  • 저필자
    전제헌(김일성종합대학 인류진화연구소)

안학궁터 발굴의 나날을 더듬어 보며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온 겨레가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행진을 줄기차게 벌여 나가고 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북남역사학자들의 접촉과 상봉이 이루어지고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안학궁터 공동조사’를 진행한 것은 분단 역사상 처음있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이 구현된 6·15공동선언을 떠나서는 북남역사학자들의 ‘안학궁터 공동조사’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동방강국—고구려 시기의 왕궁이었던 안학궁터에 대한 조사와 발굴사업이 처음으로 진행된 때로부터 어언 4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15통일시대에 와서 북남역사학자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안학궁터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니 40여 년 전 이 유적을 처음으로 발굴하던 나날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나의 머리속에 삼삼히 떠오른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안학궁터 발굴에 처음부터 직접 참가하였던 한 사람으로서 지나간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당시 발굴과정에 대하여 펜을 들게 된 것을 유다른 긍지로 생각한다.
1958년 4월 30일 대성산 유원지를 문화휴식터로, 애국주의 교양장소로 조성한다는 구상 아래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원, 학생들은 대성산 일대의 산성과 궁터, 고분들을 모두 조사 발굴하여 우리 나라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밝히며 대성산 일대의 고적들을 복구할 수 있는 과학적 기초를 마련하는 과업을 시작하였다.
1958년부터 1970년까지 10여 년 간에 걸쳐 대성산성, 안학궁터, 무덤떼 등 대성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조사와 발굴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그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복구계획까지 세우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성산 일대에서는 대성산성과 고구려 무덤떼에 대한 발굴을 먼저 진행하였고, 그 다음에 안학궁터 발굴에 착수하였다. 안학궁터 발굴에서는 궁성문터 6개, 해자와 수구문터, 도랑 그리고 궁성벽의 8개 지점을 발굴하였다. 또한 총건평 31,458m2나 되는 방대한 면적을 조사하여 52채의 건물터와 많은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안학궁의 면모가 완전히 드러나고 원상복원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안학궁 상상복원도를 훌륭하게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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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터 발굴의 나날을 더듬어 보며 자료번호 : cr.d_0006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