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
후쿠오카[福岡]현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에 일본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1933년 8월부터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촉탁이 되어 총독부 박물관에 근무하였다. 처음 황해도 황주 등지에서 사찰의 개수와 보존공사에 종사하였다.
1938년에 출간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에 실린 각종 실측도는 대부분 그가 작성한 것인데,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을 계기로 고대 사찰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학 전공자였던 세키노가 결국 고사지(古寺址) 연구에 몰두했던 배경과 경과가 너무도 흡사한 점이 주목된다.
불국사에 이어서 경주의 사천왕사, 망덕사지의 조사에도 관여하였고, 천군리 사지의 석탑 보수공사도 그가 전담하였다. 요네다는 신라 사찰에 대한 연구뿐만이 아니라 고구려 사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도 참가하였다. 특히 조선고적연구회가 실시한 청암리 폐사지의 조사에서 사실상 책임자로서 활약한 것으로 확인된다. 청암리 사지의 조사를 통해 일본 아스카시대의 사원건축과의 관계가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작성한 청암리 사지의 정밀한 도면이 기초가 되었다.
그가 1942년에 경성에서 병으로 사망하자 당시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 연구실의 무라타지로[村田次郞] 교수가 그의 연구 성과를 모아서 『조선상대건축(朝鮮上代建築)의 연구(硏究)』라는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1938년에 출간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에 실린 각종 실측도는 대부분 그가 작성한 것인데,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을 계기로 고대 사찰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학 전공자였던 세키노가 결국 고사지(古寺址) 연구에 몰두했던 배경과 경과가 너무도 흡사한 점이 주목된다.
불국사에 이어서 경주의 사천왕사, 망덕사지의 조사에도 관여하였고, 천군리 사지의 석탑 보수공사도 그가 전담하였다. 요네다는 신라 사찰에 대한 연구뿐만이 아니라 고구려 사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도 참가하였다. 특히 조선고적연구회가 실시한 청암리 폐사지의 조사에서 사실상 책임자로서 활약한 것으로 확인된다. 청암리 사지의 조사를 통해 일본 아스카시대의 사원건축과의 관계가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작성한 청암리 사지의 정밀한 도면이 기초가 되었다.
그가 1942년에 경성에서 병으로 사망하자 당시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 연구실의 무라타지로[村田次郞] 교수가 그의 연구 성과를 모아서 『조선상대건축(朝鮮上代建築)의 연구(硏究)』라는 단행본을 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