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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영초에 두 부를 세웠으나, 추한 무리는 여전히 혼미하였고,

영초에 두 부를 세웠으나, 추한 무리는 여전히 혼미하였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안제 영초 연간(107~113)에 선비대인 연려양이 궐에 이르러 조하하자, 등태후가 연려양에게 왕의 인수와 붉은 수레, 참가(세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하사하고, 오환교위가 다스리는 영성에 머무르며, 호시를 열게 했다. 이로 인하여 남북 양 부의 질관(이민족의 질자를 받아들이던 관사)을 지으니, 선비 읍락 120부가 각자 질자를 들여보냈다. 이후에 항복하기도 하고 이반하기도 하면서, 흉노·오환과 다시 서로 공격했다. 이후 요동 선비가 무려현을 포위하자, 주현이 병사를 합쳐, 굳게 지키고 들을 비우니, 선비는 소득이 없어, 다시 부여주 001
각주 001)
요동 속국의 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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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공격하여, 장리를 죽였다.”
 
• 참고
『後漢書』 卷90 烏桓鮮卑 安帝永初中 鮮卑大人燕荔陽詣闕朝賀 鄧太后賜燕荔陽王印綬 赤車參駕 令止烏桓校尉所居甯城下 通胡市 因築南北兩部質館 鮮卑邑落百二十部 各遣入質 是後或降或畔 與匈奴烏桓更相攻擊元初二年秋 遼東鮮卑圍無慮縣 州郡合兵固保清野 鮮卑無所得 復攻扶黎營 殺長吏

  • 각주 001)
    요동 속국의 속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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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에 두 부를 세웠으나, 추한 무리는 여전히 혼미하였고, 자료번호 : hw.k_0002_003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