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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기국(焉耆國)에 대한 소개

  • 국가
    언기국(焉耆國)
언기국
언기국(焉耆國) 주 001
각주 001)
焉耆國:『史記』 「匈奴列傳」의 ‘焉支山’에 대한 『史記正義』의 주석에 따르면, “焉의 音은 烟이다. 『括地志』에는 ‘焉支山은 일명 刪丹山이며 甘州 刪丹縣 東南 50리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西河故事』에는 ‘匈奴가 祁連·﹑焉支 두 산을 잃고 섭섭해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焉支山은 燕支山이라고 표기되기도 하며, 『穆天子傳』의 ‘焉居’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흉노인들이 祁連과 焉支를 구별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두 개의 다른 산줄기로 추정된다. 焉支山은 현재 甘肅 永昌의 서쪽, 즉 山丹 동남쪽에 있는 산이 아니라, 新疆의 바르쿨(巴里坤) 동쪽, 즉 천산산맥 東端의 高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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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洛陽)에서 서쪽으로 8, 200리 떨어져 있다. 그 땅이 남으로는 위려(尉犂) 주 002
각주 002)
尉犂:『漢書』 「西域傳」上에는 ‘尉黎(jwei-liei)’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Bugur이다. 黃文弼은 쿠를라(Kurla) 동북쪽, 四十里城 남쪽에 있는 넓은 폐허가 尉黎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Hulsewé 19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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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닿고 북으로는 오손(烏孫) 주 003
각주 003)
烏孫:漢代에 天山 북방 일리하, 이식 쿨 호수, 시르다리아 등의 유역에서 유목하던 집단. 그 종족적 귀속에 관해서는 투르크계로 보는 입장과 이란계로 보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烏孫에 관해서는 『漢書』 「西域傳」의 기록이 상세하다. 이에 따르면 烏孫은 처음에 甘肅 서부의 敦煌·祁連 사이에서 月氏와 인접하여 살고 있었는데, 월지의 공격을 받아 오손의 왕이 살해되자 匈奴의 보호를 청하였고, 후일 흉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천산 방면에 있던 월지를 공격하여 서투르키스탄으로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장건의 건의에 따라 흉노를 견제하기 위하여 오손과 연맹을 맺었는데 전116년의 일이었다. 양측의 화친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江都王 劉建(武帝의 조카)의 딸인 細君을 公主로 삼아서 오손왕에게 降嫁시켰는데, 그녀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詩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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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접해 있어 사방 4백 리이다. 사면이 큰 산으로 둘러싸고 있고 길이 험하며 백 명이 지키고 있으면 천 명이 그곳을 지날 수 없다. 그 풍속에 사내는 머리를 자르고 아낙은 저고리를 입고 큰 바지를 착용한다. 혼인은 중국과 같다. 이재에 밝고 속임수에 능하다. 왕에게는 시위하는 자가 수십 명이 있는데, 모두 거만하여 존비(尊卑)의 예(禮)가 없다.

  • 각주 001)
    焉耆國:『史記』 「匈奴列傳」의 ‘焉支山’에 대한 『史記正義』의 주석에 따르면, “焉의 音은 烟이다. 『括地志』에는 ‘焉支山은 일명 刪丹山이며 甘州 刪丹縣 東南 50리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西河故事』에는 ‘匈奴가 祁連·﹑焉支 두 산을 잃고 섭섭해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焉支山은 燕支山이라고 표기되기도 하며, 『穆天子傳』의 ‘焉居’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흉노인들이 祁連과 焉支를 구별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두 개의 다른 산줄기로 추정된다. 焉支山은 현재 甘肅 永昌의 서쪽, 즉 山丹 동남쪽에 있는 산이 아니라, 新疆의 바르쿨(巴里坤) 동쪽, 즉 천산산맥 東端의 高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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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尉犂:『漢書』 「西域傳」上에는 ‘尉黎(jwei-liei)’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Bugur이다. 黃文弼은 쿠를라(Kurla) 동북쪽, 四十里城 남쪽에 있는 넓은 폐허가 尉黎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Hulsewé 19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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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烏孫:漢代에 天山 북방 일리하, 이식 쿨 호수, 시르다리아 등의 유역에서 유목하던 집단. 그 종족적 귀속에 관해서는 투르크계로 보는 입장과 이란계로 보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烏孫에 관해서는 『漢書』 「西域傳」의 기록이 상세하다. 이에 따르면 烏孫은 처음에 甘肅 서부의 敦煌·祁連 사이에서 月氏와 인접하여 살고 있었는데, 월지의 공격을 받아 오손의 왕이 살해되자 匈奴의 보호를 청하였고, 후일 흉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천산 방면에 있던 월지를 공격하여 서투르키스탄으로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장건의 건의에 따라 흉노를 견제하기 위하여 오손과 연맹을 맺었는데 전116년의 일이었다. 양측의 화친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江都王 劉建(武帝의 조카)의 딸인 細君을 公主로 삼아서 오손왕에게 降嫁시켰는데, 그녀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詩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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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지명
언기국, 언기국(焉耆國), 낙양(洛陽), 위려(尉犂), 오손(烏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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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기국(焉耆國)에 대한 소개 자료번호 : jo.k_0005_0097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