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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황부 공초

원문
○更推黃溥。 刑一次, 溥供: “慶源人南龜錫持巡營軍官傳令, 來慶興, 言于臣曰: ‘巡使道謫慶源時, 聞三峰島之說, 使渠訪問, 以爲推得之地。’ 臣問其探知與否, 則龜錫曰: ‘有一人言: 「若登頭里山烽臺, 値日晴, 則僅見其島形, 如臥牛。」云。’ 臣書報巡使曰: ‘若欲得此島, 則必得二十人, 除其一年身役, 令自願勇往, 此道漁船如馬槽, 不可越海, 必有板船, 然後可以入島。’ 巡使答以此島之漏版圖, 誠可惜, 宜速造板船。’ 臣有奴稍知造船, 自二月, 先造本板, 未及完役, 聞變亂置之。 所謂投海避亂之說, 元非臣之發於口者。 金世俊及時昌等捉來面質, 則可知虛實。 黃鏻, 臣之孽七寸叔, 李參判明彦之外四寸, 素有心病, 而率置衙中。 鏻之生死, 就拿後事不能知。” 先是, 北道安撫使啓言: “三峰島, 自古無相通之事, 溥以罪人之父, 造船入往之計, 極爲凶狡。 國有緩急, 則乘此新船, 往投海中, 以避其亂之說, 溥與座首金世俊酬酢時, 及唱奴時昌、萬昌等, 得聞甚詳。” 咸鏡監司權益寬啓言: “溥孽叔黃鏻, 以衙客, 隨溥妾行到咸興地, 公然乘夜赴水死。”
번역문
황부(黃溥)를 다시 추문(推問)하였다. 한 차례 형신(刑訊)하니, 황부가 공초(供招)하기를,
“경원(慶源) 사람 남귀석(南龜錫)이 순영 군관(巡營軍官)의 전령(傳令)을 가지고 경흥(慶興)에 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순사도(巡使道)가 마침 경원(慶源)에 있을 때에 삼봉도(三峰島)에 관한 말을 듣고 나를 시켜 알아보게 하여 찾을 바탕으로 삼았다.’ 하기에, 신이 탐지하였는지를 물었더니, 남귀석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리산 봉대(頭里山烽臺)에 올라 날이 갠 때를 당하면 그 섬모양을 겨우 볼 수 있는데 누운 소와 같다.」 하므로, 신이 써서 순사에게 신보(申報)하기를, ‘이 섬을 찾으려면 반드시 스무 사람을 구하여 그 한 해 동안의 신역(身役)을 면제하되 자원하여 용맹하게 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북도(北道)의 어선(漁船)은 말구유[馬槽]같아서 바다를 건널 수 없으므로 반드시 판선(板船)이 있어야 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순사가 답하기를, ‘이 섬이 판도(板圖)에서 빠진 것은 참으로 아까우니 빨리 판선을 만들어야 하겠다.’ 하였습니다. 신에게 배를 만드는 일을 조금 아는 종이 있으므로 2월부터 먼저 본판(本板)을 만들었으나, 미처 일을 끝내지 못하고 변고를 들었으므로 버려두었습니다. 바다로 들어가 피란한다는 말은 본디 신이 입에서 낸 것이 아닙니다. 김세준(金世俊)과 시창(時昌) 등을 잡아와서 대질(對質)하면 허실(虛實)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황인(黃鏻)은 신의 얼칠촌숙(孽七寸叔)이고 참판(參判) 이명언(李明彦)의 외사촌인데 본디 심병(心病)이 있어서 아중(衙中)에 데려다 두었습니다. 황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나문(拿問)받은 뒤의 일은 신이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앞서 북도 안무사(北道安撫使)가 아뢰기를,
“삼봉도는 예전부터 서로 교통한 일이 없는데, 황부는 죄인의 아비로서 배를 만들어 들어갈 생각을 하였으니, 매우 흉악하고 교활합니다. 나라에 급한 일이 있으면 이 새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 가 그 난을 피한다는 말은 황부와 좌수(座首) 김세준이 수작할 때에 급창노(及唱奴) 시창·만창(萬昌) 등이 매우 상세히 들었습니다.”
하였고, 함경 감사(咸鏡監司) 권익관(權益寬)이 아뢰기를,
“황부의 얼숙(孽叔) 황인은 아객(衙客)으로서 황부의 첩을 따라 함흥(咸興) 땅에 가서 버젓이 밤을 타서 물에 들어가 죽었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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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 공초 자료번호 : sd.d_0149_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