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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포로가 된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의 처지를 호소하며 조선국왕이 제독부(提督府)에 보내는 자문(咨文)

40. 請出檄文全還王子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3년 2월 11일(음)(만력 21년 2월 11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사정을 간절히 호소하여 근심을 풀기를 바랍니다.
 
[조선국왕] 본월 4일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윤탁연(尹卓然)의 치계를 받았습니다.
[윤탁연] 이남의 각 주군(州郡)에서 차례대로 올린 신보(申報)에 이르기를, “각처에 주둔하는 적이 대부분 무리를 이루어 함흥부로 향하였고, 또한 일찍이 포로가 된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그리고 원래 수행하던 배신 원임 의정부 좌의정 김귀영(金貴榮),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황정욱(黃廷彧), 원임 승정원 우승지(右承旨) 황혁(黃赫) 등을 생포하여 본부(함흥부)에 도착했고, 같은 때 사로잡힌 회령진(會寧鎭) 절제사 문몽헌(文夢軒) 등 관원 10여 인은 살해했습니다. 두 왕자 및 수행하는 배신 등을 굳게 지켰으나 곤욕이 심하였고 형세가 점점 위태로워져서 마침내 보전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였습니다.
[조선국왕] 이를 받고 당직(當職)이 살펴보건대 소방은 적화(賊禍)를 입은 지 오래인지라 살육과 방화가 끝이 없을 듯합니다. 뜻밖에도 당직의 두 아들 또한 저 적들에게 잡혀가서 오랫동안 적의 진영에 구속되어 구류된 채 풀려나지 못해 온갖 계책을 내보려 했으나 끝내 좋은 계책이 없어 주야로 통곡만 할 뿐 행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대병으로 인하여 이미 평양에서 승리했고 경성으로 향하여 (적의) 형세가 썩은 나무가 꺾이는 것처럼 조석간에 마땅히 초멸될 것입니다. 저 적의 흉학함은 그 실정을 진실로 헤아리기 어려우나 끝내는 도주하여 저절로 응당 고립될 것이니 그 형세가 참으로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당직이 이에 생각해 보건대 독부(督府)의 성망(聲望)이 이미 적 사이에 퍼져 위엄을 두려워하고 넋을 잃어 기세가 꺾였으니 지금 또한 군사를 나누어 북으로 향하게 한다면주 001
각주 001)
『선조실록』에는 ‘今又分兵向北’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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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식이 저절로 미치게 되어 또한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혹 격문 한 통을 받아 언사가 달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여 엄히 화복(禍福)을 보여 주기를 “본국의 왕자 두 사람, 아울러 각 권속과 수행 관원 등을 온전히 귀환시킨다면 진실로 마땅히 너희를 용서하여 죽이지 않고 포상을 더해 줄 것이다 만약 천도(天道)를 거슬러, 형세를 믿고 항복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군사를 이끌고 바로 짓밟아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말을 반복하여 이치에 근거하여 준엄한 말로 떠들썩하게 겁을 주어 적중에 보인다면, 또한 이에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애통하고 박절한 사정(私情)이지만 당직이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이에 감히 자문을 작성하여 청하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살펴 검토하여 구제하여 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제독부에 보냅니다.
 
만력 21년 2월 11일.

  • 각주 001)
    『선조실록』에는 ‘今又分兵向北’으로 기록돼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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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의 처지를 호소하며 조선국왕이 제독부(提督府)에 보내는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1_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