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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조선 국왕의 칙사가 국서를 들고 구보님을 대면함

一. 칙사가 에도성의 넓은 툇마루로 들어서자 조선 국왕의 국서(國書)주 001
각주 001)
1607년 조선통신사가 쇼군에게 전달한 조선 국왕의 국서와 별폭. 교토대학종합박물관에 보존된 이 국서는 쓰시마가 개작한 국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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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담긴 상자를 야나가와 부젠노카미가 들고 툇마루로 와서 정좌했다. 곧 사카이 우타노카미(酒井雅樂頭)주 002
각주 002)
사카이 다다요(酒井忠世): 당시 막부의 최고직인 로주. 1605년 쇼군이 된 히데타다를 보좌하는 필두 도시요리(로주)가 되었고, 1607년 7월 슨푸성(駿府城)으로 옮겨간 이에야스를 축하하여 우타노카미(雅楽頭)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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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받아 들고 구보님 자리의 왼쪽 협탁(脇机)에 비단(唐織)을 깔고 그 위에 국서 상자를 올려 놓았다.
一. 구보님이 칙사를 대면하기 전에는 도자무라이(遠侍)주 003
각주 003)
도자무라이(遠侍): 무가 저택에서 주전(主殿)에서 멀리 떨어진 중문(中門)이나 현관에 설치한 경호 무사의 대기소. 우치사무라이(內侍)와 대칭되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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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접객하는 방이 세 개 있었다. 그 중 상단(上檀) 방이 있어 칙사가 옮겨가 앉았다. 잠시 후 대면이 있어 [막부의] 사신과 칙사 3인이 히로엔을 지나 히로마(廣間)주 004
각주 004)
히로마(廣間): 에도시대의 다이묘·귀족의 저택에서 현관 다음에 둔 넓은 방. 에도성의 오히로마(大広間)는 손님과 정식으로 대면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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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中檀) 방으로 들어가 3인이 나란히 섰다.
  첫 번째 칙사는 왼편에 서고 두 번째·세 번째도 함께 나란히 서서 네 번 반의 절[四度半拜]을 마치고, 첫째 칙사는 오른편 세 번째 칙사의 옆을 둘러 원래의 왼쪽으로 돌아가 중단의 상석에 앉았다. 두 번째[칙사]도 세 번째[칙사]도 첫 번째와 같이 절을 마치고 그 옆에 차례로 앉았다. 한편, 그다음 김첨지·박첨지 두 사람은 하단에서 네 번 반 절을 하고 물러났다.
  구보님이 보이지 않는 툇마루에 서서 다음으로 상관(上官) 26인이 툇마루에서 네 번 반 절을 하고 툇마루의 탈 것 대는 곳(車寄)주 005
각주 005)
구루마요세(車寄): 탈 것을 대어 타고 내리기 위해 건물의 현관 입구에 돌출하여 설치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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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물러났다. 중관(中官)들은 의상이 좋은 이들만 30인이 정원주 006
각주 006)
정원의 시라스(白洲, 白砂): 저택의 현관 앞에 흰 모래를 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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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3단으로 늘어서서 네 번 반 절을 했으며, 중문 바깥으로 나갔다.
  이 중관들은 접대할 필요가 없다고 모토토요(元豊)와 야나가와 부젠노카미가 말씀드렸다.
一. 상단에 다타미 자리 6개를 나란히 깔고, 그 위에 방석을 세 겹 깔고서 구보님이 옮겨 앉으셨다. 머리의 관(冠)과 의복은 흑색이다. 왼쪽 곁의 탁자에
  조선 국왕의 국서 상자가 놓여 있었다.
一. 상단은 가로 4간(間)주 007
각주 007)
다타미의 크기,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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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세로 3간 반, 중단 방도 같으며, 하단은 가로 4간에 세로도 4간이다. 구쓰가타주 008
각주 008)
가나 표기만 이루어져 있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구쓰가타노마(間)’라는 식으로 방을 의미하거나 옛 건축에서 처 마 장식의 명칭(くつがた)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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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서쪽이 상석이다.
一. 칙사에게 음식이 나가기 전에 동남쪽 모두 발을 내렸다. 상석에서 왼편, 중단에 3인이 차례차례 앉았다. 별도로 쇼반(相伴)주 009
각주 009)
쇼반(相伴): 향응 시에 배석하여 정객(正客)의 상대를 하며, 스스로도 향응을 받는 것. 또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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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한 명도 없었다.
一. 어전의 급사(給仕)들과 샤쿠(杓)주 010
각주 010)
샤쿠지(杓子)로 추정됨. 샤쿠지란 ①밥이나 국 그릇 ②숙소에서 밥 하는 여자, 또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유녀 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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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다른 사람이다.
一. 연회석을 주재한 것은 혼다 사슈(本多佐州)주 011
각주 011)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 관위(官位)는 사도노카미(佐渡守). 사슈(佐州)는 佐渡國의 별칭이라, 혼다 사슈라고 지칭한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자 에도막부의 로주. 사가미노쿠니(相模國) 다마나와번(玉縄藩. 현재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주변)의 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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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보 소슈(大久保相州)주 012
각주 012)
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 관위는 사가미노카미(相模守). 사가미노쿠니(相模國) 오다와라번(小田原藩)의 초대 번주. 1593년에 히데타다의 가로(家老)가 되었고 1610년에 로주에 취임하여 2대 쇼군 히데타다 정권의 유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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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우타노카미(酒井雅樂頭) 3인이다.
一. 따라주는 술은 두 번을 지나 세 번째에 훌륭한 대(臺)에 잔을 놓고 마시고 어전을 향했다. 구보님이 잔을 들자 첫 번째 칙사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보님의 자리로 향하여 정좌하고 바로 술을 따라 마셨다. [구보님이] 잔을 들고
  칙사를 가리키자, [칙사가]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술을 따르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고 한 번 더 술을 받아 마시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 급사(給仕)들은 잔의 대를 거두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칙사도 마찬가지로 잔대에 구보님(御前)에게 [가서] 앉았고 방식도 전과 같았다.
一. 요리가 나오고, 이어서 과자가 나왔다.
一. 과자가 나오고 곧 차가 나왔다. 차도 한 차례로 끝났다. 하시바 쓰시마노카미(羽柴對馬守)주 013
각주 013)
소 요시토시: 요시토시는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비교적 초기의 이름인 아키카게(昭景)의 ‘昭’자는 1577년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에게서 편휘(偏諱)를 받은 것이다. 후에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하시바’라는 성과 편휘 ‘吉’자를 받아 요시토시(吉智, 義智와 음은 동일)라 했고, 더 후에 요시토시(義智)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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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좌석을 보아 정돈하고, 그의 통사(通事)주 014
각주 014)
번주 소씨 휘하에 있는 쓰시마의 조선어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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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칙사가 일어날 때라고 조용히 말했다. 칙사 3인이 몸을 정돈하고 일어나서 작별 인사의 절을 전과 같이 나란히 서서 네 번 반 하고 나와서 처음 [대기했던] 도자무라이의 방 상단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관인들이 절하는 동안 칙사가 기다렸다. 김첨지·박첨지 2인과 상관·중관은 전과 같이 차례차례 절을 하고 물러났다.
一. 여러 관인들이 절하고 칙사는 자리를 나섰다. 혼다 사슈·오쿠보 소슈·사카이 우타노카미 3인은 중문 밖 돌을 깐 곳까지 나가, 칙사와 서로 두 번 배례하고 헤어졌다.
一. 칙사가 성을 나설 때, 안쪽 문 어귀에 관문(冠門)주 015
각주 015)
근세 성문(城門)의 한 종류인 가부키몬(冠木門)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보통 鏡柱, 冠木(貫), 控柱, 扉으로 구성되는데 가부키몬이란 鏡柱에 冠木을 가로지르기만 한 간소한 형태의 문이다. 방어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구역을 나누는 의미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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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었다. 그것을 나와 돌울타리의 모퉁이에서 가마에 올랐다.

  • 각주 001)
    1607년 조선통신사가 쇼군에게 전달한 조선 국왕의 국서와 별폭. 교토대학종합박물관에 보존된 이 국서는 쓰시마가 개작한 국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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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사카이 다다요(酒井忠世): 당시 막부의 최고직인 로주. 1605년 쇼군이 된 히데타다를 보좌하는 필두 도시요리(로주)가 되었고, 1607년 7월 슨푸성(駿府城)으로 옮겨간 이에야스를 축하하여 우타노카미(雅楽頭)가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도자무라이(遠侍): 무가 저택에서 주전(主殿)에서 멀리 떨어진 중문(中門)이나 현관에 설치한 경호 무사의 대기소. 우치사무라이(內侍)와 대칭되는 명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4)
    히로마(廣間): 에도시대의 다이묘·귀족의 저택에서 현관 다음에 둔 넓은 방. 에도성의 오히로마(大広間)는 손님과 정식으로 대면하는 장소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5)
    구루마요세(車寄): 탈 것을 대어 타고 내리기 위해 건물의 현관 입구에 돌출하여 설치한 부분.  바로가기
  • 각주 006)
    정원의 시라스(白洲, 白砂): 저택의 현관 앞에 흰 모래를 깐 곳.  바로가기
  • 각주 007)
    다타미의 크기,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바로가기
  • 각주 008)
    가나 표기만 이루어져 있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구쓰가타노마(間)’라는 식으로 방을 의미하거나 옛 건축에서 처 마 장식의 명칭(くつがた)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9)
    쇼반(相伴): 향응 시에 배석하여 정객(正客)의 상대를 하며, 스스로도 향응을 받는 것. 또는 그 사람.  바로가기
  • 각주 010)
    샤쿠지(杓子)로 추정됨. 샤쿠지란 ①밥이나 국 그릇 ②숙소에서 밥 하는 여자, 또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유녀 등의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11)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 관위(官位)는 사도노카미(佐渡守). 사슈(佐州)는 佐渡國의 별칭이라, 혼다 사슈라고 지칭한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자 에도막부의 로주. 사가미노쿠니(相模國) 다마나와번(玉縄藩. 현재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주변)의 번주.  바로가기
  • 각주 012)
    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 관위는 사가미노카미(相模守). 사가미노쿠니(相模國) 오다와라번(小田原藩)의 초대 번주. 1593년에 히데타다의 가로(家老)가 되었고 1610년에 로주에 취임하여 2대 쇼군 히데타다 정권의 유력자가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13)
    소 요시토시: 요시토시는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비교적 초기의 이름인 아키카게(昭景)의 ‘昭’자는 1577년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에게서 편휘(偏諱)를 받은 것이다. 후에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하시바’라는 성과 편휘 ‘吉’자를 받아 요시토시(吉智, 義智와 음은 동일)라 했고, 더 후에 요시토시(義智)로 개명했다.  바로가기
  • 각주 014)
    번주 소씨 휘하에 있는 쓰시마의 조선어 통사. 바로가기
  • 각주 015)
    근세 성문(城門)의 한 종류인 가부키몬(冠木門)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보통 鏡柱, 冠木(貫), 控柱, 扉으로 구성되는데 가부키몬이란 鏡柱에 冠木을 가로지르기만 한 간소한 형태의 문이다. 방어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구역을 나누는 의미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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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칙사가 국서를 들고 구보님을 대면함 자료번호 : kn.k_0004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