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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佩刀礪而見等威, [插]金羽以明貴賤.

佩刀礪而見等威, [插]주 001
각주 001)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插」을 보입. 앞 구절의 문장 형식을 고려할 때 동사 역할의 글자 하나가 결락되었다고 보아야 함. 주문 내용을 참조하여 「插」을 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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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羽以明貴賤.
魏收주 002
각주 002)
원문 「牧」.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收」로 교감. 『위서』의 찬자인 위수를 가리키며, 이에 「收」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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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魏書東夷傳曰: “高驪, 頭著折風, 其形如弁, 傍插鳥羽, 貴賤有差. 立則反拱.” 蕭子顯齊書東주 003
각주 003)
원문 「신출자」. 죽내본 「戎」, 탕천본·길림본 「東」으로 교감. 문맥상 「東」의 오기로 보아 「東」으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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夷傳曰: “高驪俗服窮袴, 冠折주 004
각주 004)
원문 「析」. 탕천본·길림본 「折」로 교감. 『위서』를 비롯하여 다른 기록을 참조해 「折」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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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一[梁]주 005
각주 005)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梁」을 보입. 문맥상 「梁」을 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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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謂之幘주 006
각주 006)
원문 「情」. 죽내본·탕천본·길림본 「幘」으로 교감. 고구려의 습속을 묘사한 다른 기록을 참조해 「幘」으로 교감. 이하에서도 해당글자는 동일한 원리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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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知讀五經. 使人在亰師, 中書郞王融戯曰: ‘服之不衷, 身之灾也, 頭上定是何物.’ 答曰: ‘此卽古弁之遺象也.’ 其俗拜주 007
각주 007)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則」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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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008
각주 008)
원문 「曳」.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申」으로 교감. 탕천본은 『남제서』 고구려전의 일문을 전하고 있다고 알려진 『건강실록』 16, 동이고구려에서 “拜則申一脚”이라고 한 구절에 따라 이를 「申」의 오기로 본 듯함. 한편 현전하는 『건강실록』의 해당 구절이 『한원』 주문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이를 그대로 따르기 주저되는 점이 있다. 또 『위서』 및 『수서』 고구려에서 고구려 풍습을 전하는 가운데 모두 “拜則曳一脚”이라 했음을 고려할 때 원문대로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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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脚, 受令주 009
각주 009)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則」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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跪. [行]주 010
각주 010)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行」을 보입. 문맥상 「行」을 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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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走, 以爲恭주 011
각주 011)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敬」을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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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梁元帝職貢圖云: “高驪, 婦人衣白, 而男子衣紅주 012
각주 012)
원문 「結」.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紅」으로 교감. 문맥상 「紅」으로 교감. 한편 장경모본의 『직공도』에서는 이 부분이 ‘袺’로 표기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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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 飾주 013
각주 013)
원문 「鈴」.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 「飾」으로 교감. 문맥상 「飾」으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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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金銀. 貴者冠幘, 而[無]주 014
각주 014)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無」를 보입. 앞서 9번째 정문에서 “大加主[簿]著幘 無後”라고 했던 부분이나 『양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所著似幘 而無後”라고 했던 부분을 볼 때, 본문에서는 「無」의 결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짐. 장경모본 「직공도」에서는 “貴者冠幘 而無復”이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復’을 ‘後’의 오기로 본다면 이 또한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지』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라고 했던 부분이나 『후한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皆著幘 如冠幘而無後”라 했던 부분 등을 통해 볼 때, 중국과 달리 幘의 뒤쪽이 없는 형태의 고구려 幘은 그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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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以金銀爲鹿耳주 015
각주 015)
원문 「耳」.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茸」으로 교감. 장경모본 「직공도」나 북송모본 「직공도」에서 모두 “以金銀爲鹿耳”라고 되어 있음. 따라서 원문대로 두어도 무방하므로 교감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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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加之幘上. 賤者冠折風. 穿耳以金鐶. 上衣白衫, 下白주 016
각주 016)
원문 「曰」.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白」으로 교감. 문맥상 「白」으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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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袴, 腰주 017
각주 017)
원문 「要」. 죽내본·탕천본·길림본 「腰」로 교감. 「腰」의 오기임이 분명하므로 「腰」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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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銀帶. 左佩礪, 而右佩五子刀. 足履豆禮鞜주 018
각주 018)
원문 「𩎽」. 죽내본·탕천본·길림본 「鞜」으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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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驪記云: “其人亦造주 019
각주 019)
원문 「迼」. 탕천본 원문에서는 ‘迼’로 쓰고 있으나 문맥상 「造」로 교감. 이하에서도 해당 글자는 동일한 원리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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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 紫地纈文者爲上, 次有五色錦, 次有雲布錦. 又造白疊布, 靑布而尤佳. 又造鄣日, 華言接籬, 其毛卽靺鞨猪髮也.”

  • 각주 001)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插」을 보입. 앞 구절의 문장 형식을 고려할 때 동사 역할의 글자 하나가 결락되었다고 보아야 함. 주문 내용을 참조하여 「插」을 보입. 바로가기
  • 각주 002)
    원문 「牧」.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收」로 교감. 『위서』의 찬자인 위수를 가리키며, 이에 「收」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03)
    원문 「신출자」. 죽내본 「戎」, 탕천본·길림본 「東」으로 교감. 문맥상 「東」의 오기로 보아 「東」으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04)
    원문 「析」. 탕천본·길림본 「折」로 교감. 『위서』를 비롯하여 다른 기록을 참조해 「折」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05)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梁」을 보입. 문맥상 「梁」을 보입. 바로가기
  • 각주 006)
    원문 「情」. 죽내본·탕천본·길림본 「幘」으로 교감. 고구려의 습속을 묘사한 다른 기록을 참조해 「幘」으로 교감. 이하에서도 해당글자는 동일한 원리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07)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則」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바로가기
  • 각주 008)
    원문 「曳」.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申」으로 교감. 탕천본은 『남제서』 고구려전의 일문을 전하고 있다고 알려진 『건강실록』 16, 동이고구려에서 “拜則申一脚”이라고 한 구절에 따라 이를 「申」의 오기로 본 듯함. 한편 현전하는 『건강실록』의 해당 구절이 『한원』 주문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이를 그대로 따르기 주저되는 점이 있다. 또 『위서』 및 『수서』 고구려에서 고구려 풍습을 전하는 가운데 모두 “拜則曳一脚”이라 했음을 고려할 때 원문대로 둠. 바로가기
  • 각주 009)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則」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바로가기
  • 각주 010)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行」을 보입. 문맥상 「行」을 보입. 바로가기
  • 각주 011)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敬」을 보입. 그러나 보입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둠. 바로가기
  • 각주 012)
    원문 「結」.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紅」으로 교감. 문맥상 「紅」으로 교감. 한편 장경모본의 『직공도』에서는 이 부분이 ‘袺’로 표기되어 있음. 바로가기
  • 각주 013)
    원문 「鈴」.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 「飾」으로 교감. 문맥상 「飾」으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14)
    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無」를 보입. 앞서 9번째 정문에서 “大加主[簿]著幘 無後”라고 했던 부분이나 『양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所著似幘 而無後”라고 했던 부분을 볼 때, 본문에서는 「無」의 결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짐. 장경모본 「직공도」에서는 “貴者冠幘 而無復”이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復’을 ‘後’의 오기로 본다면 이 또한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지』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라고 했던 부분이나 『후한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皆著幘 如冠幘而無後”라 했던 부분 등을 통해 볼 때, 중국과 달리 幘의 뒤쪽이 없는 형태의 고구려 幘은 그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15)
    원문 「耳」.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茸」으로 교감. 장경모본 「직공도」나 북송모본 「직공도」에서 모두 “以金銀爲鹿耳”라고 되어 있음. 따라서 원문대로 두어도 무방하므로 교감하지 않음. 바로가기
  • 각주 016)
    원문 「曰」. 죽내본 원문대로, 탕천본·길림본 「白」으로 교감. 문맥상 「白」으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17)
    원문 「要」. 죽내본·탕천본·길림본 「腰」로 교감. 「腰」의 오기임이 분명하므로 「腰」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18)
    원문 「𩎽」. 죽내본·탕천본·길림본 「鞜」으로 교감. 바로가기
  • 각주 019)
    원문 「迼」. 탕천본 원문에서는 ‘迼’로 쓰고 있으나 문맥상 「造」로 교감. 이하에서도 해당 글자는 동일한 원리로 교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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佩刀礪而見等威, [插]金羽以明貴賤. 자료번호 : hw.m_0002_0060_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