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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환인이 입조해 표를 바치니, 안식[국]까지 편안하게 통하였다.

환인이 입조해 표를 바치니, 안식[국]까지 편안하게 통하였다.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안식국의 도읍은 번두성주 001
각주 001)
番兜城: Parthia를 音寫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後漢書集解』에 安息의 수도는 和䄣(ɣua-d’uk)이며, 동쪽 변경지역에 木鹿 (muk-luk)이라는 도시가 있고 小安息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和䄣은 Hecatompylos를, 木鹿는 Muru 즉 현재의 Merv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Hulsewé, 1979, 115~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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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장안과의 거리는 1만 1천 600리이다주 002
각주 002)
“장안에서 11,600리”라고 하면 장안에서 大月氏까지의 거리와 동일한 셈인데, 大月氏에서 서쪽으로 49日行하면 安息에 도달한다는 大月氏國條의 기록과 배치된다(동북아역사재단 편, 앞의 책,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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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으로는 강거, 동쪽으로는 오익산리, 서쪽으로는 조지와 접한다. 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가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안식[국]에 이르자, 왕은 장수에게 2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동쪽 경계에서 맞이하게 하였다. 동쪽 경계는 왕도에서 수천 리 떨어져 있어서, 가는 길에 수십 성을 지나야 이르며, 사람들은 잇달아 이어졌다. 이로 인해 한의 사신을 따라 사신을 보내어 한의 땅에 와서 보게 했다. [또한] 큰 새의 알과 이헌주 003
각주 003)
犁軒은 大秦의 별칭으로 파르티아제국과 아라비아반도 서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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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환인을 천자에게 바치니 천자는 크게 기뻐하였다.”
 
• 참고
『漢書』 卷96 安息國 安息國 王治番兜城 去長安萬一千六百里 不屬都護 北與康居 東與烏弋山離 西與條支接 土地風氣 物類所有 民俗與烏弋 罽賓同 亦以銀爲錢 文獨爲王面 幕爲夫人面 王死輒更鑄錢 有大馬爵 其屬小大數百城 地方數千里 最大國也 臨嬀水 商賈車船行旁國 書革 旁行爲書記 武帝始遣使至安息 王令將將二萬騎迎於東界 東界去王都數千里 行比至 過數十城 人民相屬 因發使隨漢使者來觀漢地 以大鳥卵及犁靬眩人獻於漢 天子大說 安息東則大月氏
『史記』 卷123 大宛 初 漢使至安息 安息王令將二萬騎迎於東界 東界去王都數千里 行比至 過數十城 人民相屬甚多 漢使還 而後發使隨漢使來觀漢廣大 以大鳥卵及黎軒善眩人獻于漢 及宛西小國驩潛 大益 宛東姑師扞罙 蘇薤之屬 皆隨漢使獻見天子 天子大悅

  • 각주 001)
    番兜城: Parthia를 音寫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後漢書集解』에 安息의 수도는 和䄣(ɣua-d’uk)이며, 동쪽 변경지역에 木鹿 (muk-luk)이라는 도시가 있고 小安息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和䄣은 Hecatompylos를, 木鹿는 Muru 즉 현재의 Merv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Hulsewé, 1979, 115~116쪽). 바로가기
  • 각주 002)
    “장안에서 11,600리”라고 하면 장안에서 大月氏까지의 거리와 동일한 셈인데, 大月氏에서 서쪽으로 49日行하면 安息에 도달한다는 大月氏國條의 기록과 배치된다(동북아역사재단 편, 앞의 책, 392쪽). 바로가기
  • 각주 003)
    犁軒은 大秦의 별칭으로 파르티아제국과 아라비아반도 서쪽에 위치해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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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이 입조해 표를 바치니, 안식[국]까지 편안하게 통하였다. 자료번호 : hw.k_0002_013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