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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셋째 [아들] 후가 나란히 세워져, 이윽고 장가[군]에 배향되었고,

셋째 [아들] 후가 나란히 세워져, 이윽고 장가[군]에 배향되었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야랑후 죽왕[에 대하여], 이료주 001
각주 001)
夷獠는 주로 공간적으로 지금의 四川 동부에서 雲南 廣西 교계지역, 시간적으로 후한 말에서 남북조시기에 주로 활동했던 종족으로, 사료에는 ‘獠’ 혹은 ‘夷獠’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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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혹 죽왕이 [인간] 피의 기운으로 태어난 자가 아니라고 여겨 그를 매우 중시하니, 후사로 세워줄 것을 청하였다. 장가태수 오패가 아뢰니, 천자가 이에 그 셋째 아들을 봉하여 후로 삼았다. [그가] 죽자, 아버지에게 배향하였다. 지금도 야랑현에 죽왕삼랑신주 002
각주 002)
이현의 주에 따르면, 『한서』 「지리지」와 『화양국지』를 인용하며, 야랑현에는 遯水가 있는 동으로 廣鬱에까지 다다르며 이때 遯水는 鬱林을 지나는데 三郞祠가 있으며 모두 신령한 소리가 나고, 竹王이 들판에 버린 부서진 대나무가 죽림을 이루었는데, 오늘날 王祠竹林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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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앞서 초나라 경양왕주 003
각주 003)
전국시기 楚의 군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298년~기원전 26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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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장수 장호를 보내 원수주 004
각주 004)
이현의 주에 따르면, 원수는 牂柯郡, 즉 옛 且蘭 동북에서부터 辰州·潭州·岳州를 거쳐 洞庭湖를 지나 長江에 들어간다고 하였다(沅水出牂柯故且蘭東北, 經辰州·潭州·岳州, 經洞庭湖入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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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따라 야랑을 정벌하였다. [당시] 군대가 차란주 005
각주 005)
차란은 현재 福泉, 黃平, 貴定 일대이며, 치소는 舊州였다. 『한서』에서 처음 보인다. “楚頃襄王遺將莊礄卒循沅水而上, 經黔中代夜郎, 軍至且蘭椓船於船而步戰, 滅且蘭伐夜郎, 夜郎迎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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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자, 물가에 배를 고정시켜 두고 보병전을 치렀다. 이윽고 야랑을 멸하니, 차란은 배를 묶었던 말뚝이 있었던 곳이므로, 이에 그 이름을 고쳐 장가라고 하였다주 006
각주 006)
정문 03은 『후한서』에서 야랑에 관하여 야랑후를 칭하고 죽을 성으로 삼아 무제 원정 6년 인수를 받은 내용(정문 01의 내용) 바로 뒤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원』에서는 내용을 나누어, 그 사이에 애로(애뢰)에 관한 내용(정문 02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원』에서는 정문 01~04에 야랑과 애로(애뢰)에 관한 내용이 번갈아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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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後漢書』 卷86 夜郞 夜郞者 初有女子浣於遯水 有三節大竹流入足閒 聞其中有號聲 剖竹視之 得一男兒 歸而養之 及長 有才武 自立爲夜郞侯 以竹爲姓 武帝元鼎六年 平南夷 爲牂柯郡 夜郞侯迎降 天子賜其王印綬後遂殺之 夷獠咸以竹王非血氣所生 甚重之 求爲立後 牂柯太守 霸以聞 天子乃封其三子爲侯 死 配食其父 今夜郞縣有竹王三郞神是也 初 楚頃襄王時 遣將莊豪從沅水伐夜郞 軍至且蘭 椓船於岸而步戰 旣滅夜郞 因留王滇池 以且蘭[有]椓船牂柯處 乃改其名爲牂柯

  • 각주 001)
    夷獠는 주로 공간적으로 지금의 四川 동부에서 雲南 廣西 교계지역, 시간적으로 후한 말에서 남북조시기에 주로 활동했던 종족으로, 사료에는 ‘獠’ 혹은 ‘夷獠’로 등장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현의 주에 따르면, 『한서』 「지리지」와 『화양국지』를 인용하며, 야랑현에는 遯水가 있는 동으로 廣鬱에까지 다다르며 이때 遯水는 鬱林을 지나는데 三郞祠가 있으며 모두 신령한 소리가 나고, 竹王이 들판에 버린 부서진 대나무가 죽림을 이루었는데, 오늘날 王祠竹林이라고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전국시기 楚의 군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298년~기원전 263년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현의 주에 따르면, 원수는 牂柯郡, 즉 옛 且蘭 동북에서부터 辰州·潭州·岳州를 거쳐 洞庭湖를 지나 長江에 들어간다고 하였다(沅水出牂柯故且蘭東北, 經辰州·潭州·岳州, 經洞庭湖入江也). 바로가기
  • 각주 005)
    차란은 현재 福泉, 黃平, 貴定 일대이며, 치소는 舊州였다. 『한서』에서 처음 보인다. “楚頃襄王遺將莊礄卒循沅水而上, 經黔中代夜郎, 軍至且蘭椓船於船而步戰, 滅且蘭伐夜郎, 夜郎迎降.” 바로가기
  • 각주 006)
    정문 03은 『후한서』에서 야랑에 관하여 야랑후를 칭하고 죽을 성으로 삼아 무제 원정 6년 인수를 받은 내용(정문 01의 내용) 바로 뒤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원』에서는 내용을 나누어, 그 사이에 애로(애뢰)에 관한 내용(정문 02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원』에서는 정문 01~04에 야랑과 애로(애뢰)에 관한 내용이 번갈아 배치되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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