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역주 한원

야랑이 왕업을 열었으니, 이는 떠내려 온 대나무 정기에 합치된 것이었고,

야랑이 왕업을 열었으니, 이는 떠내려 온 대나무 정기에 합치된 것이었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남이는 모두 촉군 새외에 있다. 야랑국주 001
각주 001)
야랑국의 위치와 강역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어 왔다. 크게 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한대 장가군의 강역에 해당한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장가군을 포함한 여러 군에 해당한다는 견해이다. 대체로 현재 귀주 서남과 서북, 운남의 동북과 동남 그리고 광서 북부 일부를 포괄한다. 자세한 사항은 동북아역사재단, 2009,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1 史記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12~213쪽 참고. 이하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로 약칭.
닫기
이 있는데, 동쪽으로는 교지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전국주 002
각주 002)
전국은 운남의 별칭이다. 전국의 강역은 대체로 후한대 익주군에서 서부도위 관할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 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 214쪽 참고.
닫기
과 [접하며], 전국 북쪽에 공도국이 있는데, 각각 군장을 세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좌임주 003
각주 003)
생머리를 말아 올려 위로 상투를 틀고 윗옷을 왼쪽으로 여민 형태를 말하는데, 특정한 종족의 특성이라기보다 漢族과 다른 풍속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異民族 풍속에서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다(동북아역사재단, 2009,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3 後漢書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100쪽. 이하 『후한서』 「남만서남이이열전」 역주로 약칭).
닫기
을 하며, 읍에 모여서 살고, 밭을 경작할 수 있다. 그 바깥에는 포수주 004
각주 004)
『後漢書』에는 「布」가 생략되어 있다. 단, 이현의 주에 따르면, 「布舊昆明」의 용례가 많으므로 모든 「嶲」는 「布舊」의 오기라고 한다. 전승 과정에서 착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닫기
와 곤명 여러 부락이 있는데, 서쪽으로는 동사주 005
각주 005)
현 雲南省 保山 일대.
닫기
에 이르고, 동북쪽으로는 엽유주 006
각주 006)
현 雲南省 大理 일대.
닫기
까지 이르러, 땅이 방 수천 리이다. 군장이 없으며, 변발을 하고, 가축을 따라 옮겨 다녀 상주하는 곳이 없다. 포수에서 동북쪽에 작도국이 있고, 작도국 동북쪽에는 염방국이 있다. 일부는 정착생활을 하고, 일부는 가축을 따라 옮겨 다닌다. 염방에서 동북쪽에 백마국주 007
각주 007)
현 四川 成縣. 각 위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 참조.
닫기
이 있는데, 저 종족이다. 이 세 나라는 또한 군장이 있다. 야랑은 일찍이 한 여자가 둔수에서 몸을 씻을 때, 세 마디의 커다란 대나무가 다리 사이로 흘러들어왔는데, 그 속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대나무를 쪼개어 [속을] 보니, 한 남자아이를 얻어 [데리고] 돌아와 길러진 인물이었다. 장성하자 무예에 재능이 있어, 자립하여 야랑후라 하고, 죽을 성으로 삼았다. 무제 원정 6년(기원전 111)에 서남이를 평정하여주 008
각주 008)
『後漢書』에는 ‘남이를 평정하여’로 되어 있다.
닫기
장가군로 삼았다. 야랑후가 [무제를] 맞아 투항하자, 천자가 그에게 왕의 인수를 사여하였다가, 후에 마침내 그를 죽였다.”
 
• 참고
『後漢書』 卷86 西南夷 西南夷者 在蜀郡徼外 有夜郞國 東接交阯 西有滇國 北有邛都國 各立君長 其人皆椎結左衽 邑聚而居 能耕田 其外又有雟昆明諸落 西極同師 東北至葉楡 地方數千里 無君長 辮髮 隨畜遷徙無常自雟東北有莋都國 東北有冉駹國 或土著 或隨畜遷徙 自冉駹東北有白馬國 氐種是也 此三國亦有君長 夜郞者 初有女子浣於遯水 有三節大竹流入足閒 聞其中有號聲 剖竹視之 得一男兒 歸而養之 及長 有才武 自立爲夜郞侯 以竹爲姓 武帝元鼎六年 平南夷 爲牂柯郡 夜郞侯迎降 天子賜其王印綬 後遂殺之
『史記』 卷116 西南夷 西南夷君長以什數 夜郞最大 其西靡莫之屬以什數 滇最大 自滇以北君長以什數 邛都最大 此皆魋結 耕田 有邑聚 其外西自同師以東 北至楪楡 名爲嶲昆明 皆編髮 隨畜遷徙 毋常處 毋君長 地方可數千里 自嶲以東北 君長以什數 徙筰都最大 自筰以東北 君長以什數 冄駹最大 其俗或土箸 或移徙 在蜀之西 自冄駹以東北 君長以什數 白馬最大 皆氐類也 此皆巴蜀西南外蠻夷也

  • 각주 001)
    야랑국의 위치와 강역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어 왔다. 크게 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한대 장가군의 강역에 해당한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장가군을 포함한 여러 군에 해당한다는 견해이다. 대체로 현재 귀주 서남과 서북, 운남의 동북과 동남 그리고 광서 북부 일부를 포괄한다. 자세한 사항은 동북아역사재단, 2009,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1 史記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12~213쪽 참고. 이하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로 약칭. 바로가기
  • 각주 002)
    전국은 운남의 별칭이다. 전국의 강역은 대체로 후한대 익주군에서 서부도위 관할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 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 214쪽 참고. 바로가기
  • 각주 003)
    생머리를 말아 올려 위로 상투를 틀고 윗옷을 왼쪽으로 여민 형태를 말하는데, 특정한 종족의 특성이라기보다 漢族과 다른 풍속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異民族 풍속에서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다(동북아역사재단, 2009,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3 後漢書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100쪽. 이하 『후한서』 「남만서남이이열전」 역주로 약칭). 바로가기
  • 각주 004)
    『後漢書』에는 「布」가 생략되어 있다. 단, 이현의 주에 따르면, 「布舊昆明」의 용례가 많으므로 모든 「嶲」는 「布舊」의 오기라고 한다. 전승 과정에서 착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현 雲南省 保山 일대. 바로가기
  • 각주 006)
    현 雲南省 大理 일대. 바로가기
  • 각주 007)
    현 四川 成縣. 각 위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기』 「서남이열전」 역주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8)
    『後漢書』에는 ‘남이를 평정하여’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야랑이 왕업을 열었으니, 이는 떠내려 온 대나무 정기에 합치된 것이었고, 자료번호 : hw.k_0002_01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