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무소가 상서로움을 바쳐, 원시 연간부터 통역하며 소통했으며,
검은 무소가 상서로움을 바쳐, 원시 연간부터 통역하며 소통했으며,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망이 보정하던 원시 2년(2), 일남[군] 남쪽의 황지국[의 사신]이 와서 무소를 바쳤다. 대체로 교지[군]이 관할하는 곳은 비록 군현이 설치되었으나 언어가 각각 달라 통역을 거듭해야 겨우 통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같아 장유의 구별이 없고, 목덜미에 상투를 틀고, 맨발로 다니며, 베를 [구멍을 뚫어] 머리에 꿰어 입었다. 후에 중국 죄인을 상당수 옮겨 그 사이에 섞여 살게 하니, 이에 조금씩 언어를 알게 되어 점차 예로 교화되었다.”
• 참고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76 逮王莽輔政 元始二年 日南之南黃支國來獻犀牛 凡交阯所統 雖置郡縣 而言語各異 重譯乃通 人如禽獸 長幼無別 項髻徒跣 以布貫頭而著之 後頗徙中國罪人 使雜居其閒 乃稍知言語漸見禮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