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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말머리는 귀의할 곳을 알려, 큰 나라에 알현해야 함을 밝혔고,

말머리는 귀의할 곳을 알려, 큰 나라에 알현해야 함을 밝혔고,
육홰의 『업중기』주 001
각주 001)
『隋書』 「經籍志」에 따르면, 『鄴中記』는 3권으로 구성되었고 晉의 國子助敎 陸翽가 편찬하였다고 한다. 後趙의 3번째 황제 石虎(재위 기간, 334~349)에 관해 기록한 책인데, 그 원본은 이미 망실되었고 『영락대전』에 산견하는 몇몇 구절들을 모아 1권으로 만든 武英殿聚珍板全書本의 『업중기』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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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숙신은 업주 002
각주 002)
업성은 213년에 조조가 위공에 오르며 수도로 삼은 이래, 조위, 후조, 염위, 전연, 동위, 북제 등 여섯 왕조의 도성이었다가 577년 북제가 멸망하며 궁전이 허물어졌고, 580년 수 문제가 위지형의 반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주거지역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하북성 한단시 임장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하며,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업북성과 업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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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동북쪽에 있고, 업에서 5만 리 떨어져 있다. [숙신이] 보낸 사자가 4년 만에 도달하여, 석노와 호시를 바쳤다. 사자에게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왔냐고 물었다. 답하길, ‘소와 말이 서남쪽을 향해 잠들기를 3년이니, 곧 대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왔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숙신은] 항상 이것을 [대국에 갈] 징후로 여겼다주 003
각주 003)
“사자에게 ~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晉書』에도 전한다. 단, 주문의 마지막 구절 「恒以此爲候也」는 『晉書』에 없으므로 『鄴中記』에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 『晉書』의 해당 부분 글자 중 「每」와 「候」가 이 구절의 「恒」과 「候」로 착종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부분까지 『鄴中記』의 내용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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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晉書』 卷97 肅愼氏 至成帝時 通貢於石季龍 四年方達 季龍問之 答曰 每候牛馬向西南眠者三年矣 是知有大國所在 故來 云

  • 각주 001)
    『隋書』 「經籍志」에 따르면, 『鄴中記』는 3권으로 구성되었고 晉의 國子助敎 陸翽가 편찬하였다고 한다. 後趙의 3번째 황제 石虎(재위 기간, 334~349)에 관해 기록한 책인데, 그 원본은 이미 망실되었고 『영락대전』에 산견하는 몇몇 구절들을 모아 1권으로 만든 武英殿聚珍板全書本의 『업중기』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업성은 213년에 조조가 위공에 오르며 수도로 삼은 이래, 조위, 후조, 염위, 전연, 동위, 북제 등 여섯 왕조의 도성이었다가 577년 북제가 멸망하며 궁전이 허물어졌고, 580년 수 문제가 위지형의 반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주거지역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하북성 한단시 임장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하며,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업북성과 업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사자에게 ~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晉書』에도 전한다. 단, 주문의 마지막 구절 「恒以此爲候也」는 『晉書』에 없으므로 『鄴中記』에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 『晉書』의 해당 부분 글자 중 「每」와 「候」가 이 구절의 「恒」과 「候」로 착종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부분까지 『鄴中記』의 내용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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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는 귀의할 곳을 알려, 큰 나라에 알현해야 함을 밝혔고, 자료번호 : hw.k_0002_009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