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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계[람]산은 동쪽에 우뚝 솟았으니, 사계절 내내 중화와 같았고,

계[람]산주 001
각주 001)
계룡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룡산은 鷄藍山·翁山·西嶽·中嶽·鷄嶽 등으로 불리었다. 신라 중대 이후에는 ‘5악’ 중의 西岳이었다(『三國史記』 卷32 祭祀 “中祀 五岳 東吐含山[大城郡] 南地理山[菁州] 西雞龍山[熊川州] 北太伯山[奈已郡] 中父岳[一云公山 押督郡]). 『括地志』에서 백제의 동쪽에 있다고 하는 ‘계람산’ 역시 계룡산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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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동쪽에 우뚝 솟았으니, 사계절 내내 중화와 같았고,
『괄지지』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오산주 002
각주 002)
『三國史記』 祭祀조의 中祀 중 하나로 기록된 烏西岳으로 보인다(채미하, 「백제의 산천제사와 그 整備」 『동국사학』 48, 2009,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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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라 북쪽 경계에 있으며 대산이다. 초목과 조수가 중국과 같다. 또 나라 동쪽에 계람산이 있고 [계람]산 남쪽에 또 조조산이 있다. 또 나라 남쪽 경계에 무오산주 003
각주 003)
『三國史記』 祭祀조에서 전하는 中祀의 하나로 남악인 지리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채미하, 위의 논문, 2009,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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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그 산의 초목은 겨울이든 여름이든 항상 무성하였다. 또 차나산주 004
각주 004)
『三國史記』 祭祀조에서 전하는 小祀의 하나인 월나악(또는 태안의 나산)으로 추정된다(채미하, 위의 논문, 2009,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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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데, 나라 서쪽 경계에 있다. 또 산차산·예모산이 있는데, 모두 돌로 [되어 있으며] 나라 남쪽에 있다주 005
각주 005)
이도학은 3산을 수도 사비의 日山(現 金城山), 吳山(現 염창리 오석산), 浮山이라고 하였다. 5岳의 경우 中岳을 제외하고 東岳으로써 鷄龍山, 西岳으로써 月出山, 南岳으로써 智異山, 北岳으로써 烏棲山이 5岳으로 설정되었다고 추정하였다. 5악의 성립은 국토의 진호와 국가의 군사적 의지 등을 반영한다고 보았다(李道學, 「泗沘時代 百濟의 四方界山과 護國寺刹의 成立」 『百濟硏究』20, 1989, 121~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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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계룡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룡산은 鷄藍山·翁山·西嶽·中嶽·鷄嶽 등으로 불리었다. 신라 중대 이후에는 ‘5악’ 중의 西岳이었다(『三國史記』 卷32 祭祀 “中祀 五岳 東吐含山[大城郡] 南地理山[菁州] 西雞龍山[熊川州] 北太伯山[奈已郡] 中父岳[一云公山 押督郡]). 『括地志』에서 백제의 동쪽에 있다고 하는 ‘계람산’ 역시 계룡산으로 볼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三國史記』 祭祀조의 中祀 중 하나로 기록된 烏西岳으로 보인다(채미하, 「백제의 산천제사와 그 整備」 『동국사학』 48, 2009, 36쪽). 바로가기
  • 각주 003)
    『三國史記』 祭祀조에서 전하는 中祀의 하나로 남악인 지리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채미하, 위의 논문, 2009, 36쪽). 바로가기
  • 각주 004)
    『三國史記』 祭祀조에서 전하는 小祀의 하나인 월나악(또는 태안의 나산)으로 추정된다(채미하, 위의 논문, 2009, 36쪽). 바로가기
  • 각주 005)
    이도학은 3산을 수도 사비의 日山(現 金城山), 吳山(現 염창리 오석산), 浮山이라고 하였다. 5岳의 경우 中岳을 제외하고 東岳으로써 鷄龍山, 西岳으로써 月出山, 南岳으로써 智異山, 北岳으로써 烏棲山이 5岳으로 설정되었다고 추정하였다. 5악의 성립은 국토의 진호와 국가의 군사적 의지 등을 반영한다고 보았다(李道學, 「泗沘時代 百濟의 四方界山과 護國寺刹의 成立」 『百濟硏究』20, 1989, 121~126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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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람]산은 동쪽에 우뚝 솟았으니, 사계절 내내 중화와 같았고, 자료번호 : hw.k_0002_008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