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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파도는 황천에서 서로 부딪쳐, 성벽에 드리우니 화살을 경계했다.

파도는 황천에서 서로 부딪쳐, 성벽에 드리우니주 001
각주 001)
탕천본은 원문의 「藹」를 ‘雲霧’의 뜻을 갖는 「靄」로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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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을 경계했다.
『한서』 지리지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요동군 망평현주 002
각주 002)
漢代 遼東郡 18개 속현 중 하나로서 요동군 소속 현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 중국 요령성 鐵嶺縣 남쪽 新臺子鎭 고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望平縣은 後漢시대에 이르러 遼東郡의 몇몇 속현이 遼東屬國으로 편제되거나 玄菟郡에 이관되는 등 몇 차례 부침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계속 요동군의 속현으로 유지되었다(孫進己 主編, 『東北歷史地理』 1, 1988, 378~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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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요수[가 있다.]주 003
각주 003)
『漢書』 地理志에서 인용한 부분은 “遼東郡 望平縣 大遼水” 아홉 글자뿐이고, 뒤에 이어지는 구절은 그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漢書』 卷28下 遼東郡을 보면, “望平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莽曰長說”이라 하고 있어 이어지는 『翰苑』 주문의 서술과 관련이 없다. 따라서 『翰苑』 주문의 찬자가 인용한 大遼水에 대한 서술은 “後人이 大遼水에 대해서 어떤 사서를 인용하여 『漢書』 본 구절에 細注로 기입한 것이 어느 사이에 본문 중에 섞여들어 가버렸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 뒤에 강폭에 대한 서술로 “闊百餘步” 네 글자가 중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보았으며, “거란국”이라는 호칭이 보이기 때문에 이는 北魏 이후 문헌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湯淺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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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강물은 서남쪽에서 발원하며 물길은 거란국의 황수와 합쳐진다. 또 서남쪽으로 요동성 서쪽 80리를 지난다. 또 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넓이가 100여 보이다. 『고려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강물은 넓이가 100여 보이며, 잔잔하게 흐르고 맑고 깊다. 또 물굽이와 연못, [강의] 지류가 많다. 양쪽 물가에 긴 버들이 자라는데, 집을 숨기고 가히 병마를 감출만하다. 양쪽 강변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데, 모두 이름하여 요택이라 한다. [못가에는] 잔풀과 억새풀, 온갖 짐승이 많이 산다.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드리워졌다가 금방 걷히곤 하는데, 모양이 누치와 같으니 바로 『한서』에 이른바 신기주 004
각주 004)
『漢書』 天文志에 “海旁蜃氣象樓臺 廣壄氣成宮闕然”이라는 구절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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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것이다주 005
각주 005)
여기서 『高麗記』의 인용이 어디까지인지 확실치 않다. 잠정적으로 『漢書』 天文志 인용 기사까지 『高麗記』의 서술로 본 견해를 따른다(湯淺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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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漢書』 卷28下 地理志 遼東郡 秦置 屬幽州 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 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 縣十八 … 望平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莽曰長說
『漢書』 卷26 天文志 海旁蜃氣象樓臺 廣壄氣成宮闕然

  • 각주 001)
    탕천본은 원문의 「藹」를 ‘雲霧’의 뜻을 갖는 「靄」로 풀이. 바로가기
  • 각주 002)
    漢代 遼東郡 18개 속현 중 하나로서 요동군 소속 현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 중국 요령성 鐵嶺縣 남쪽 新臺子鎭 고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望平縣은 後漢시대에 이르러 遼東郡의 몇몇 속현이 遼東屬國으로 편제되거나 玄菟郡에 이관되는 등 몇 차례 부침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계속 요동군의 속현으로 유지되었다(孫進己 主編, 『東北歷史地理』 1, 1988, 378~379쪽). 바로가기
  • 각주 003)
    『漢書』 地理志에서 인용한 부분은 “遼東郡 望平縣 大遼水” 아홉 글자뿐이고, 뒤에 이어지는 구절은 그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漢書』 卷28下 遼東郡을 보면, “望平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莽曰長說”이라 하고 있어 이어지는 『翰苑』 주문의 서술과 관련이 없다. 따라서 『翰苑』 주문의 찬자가 인용한 大遼水에 대한 서술은 “後人이 大遼水에 대해서 어떤 사서를 인용하여 『漢書』 본 구절에 細注로 기입한 것이 어느 사이에 본문 중에 섞여들어 가버렸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 뒤에 강폭에 대한 서술로 “闊百餘步” 네 글자가 중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보았으며, “거란국”이라는 호칭이 보이기 때문에 이는 北魏 이후 문헌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湯淺 88쪽). 바로가기
  • 각주 004)
    『漢書』 天文志에 “海旁蜃氣象樓臺 廣壄氣成宮闕然”이라는 구절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여기서 『高麗記』의 인용이 어디까지인지 확실치 않다. 잠정적으로 『漢書』 天文志 인용 기사까지 『高麗記』의 서술로 본 견해를 따른다(湯淺 88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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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황천에서 서로 부딪쳐, 성벽에 드리우니 화살을 경계했다. 자료번호 : hw.k_0002_0060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