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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채동은 진을 세우고, 정성을 받아들여 공적을 거두었고,

채동은 진을 세우고, 정성을 받아들여 공적을 거두었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건무 21년(45), 선비와 흉노가 요동에 들어오자, 요동태수채동이 그들을 격파했다. 거의 다 죽이거나 사로잡으니, 이로 인하여 두려워하였다. 남선우가 한에 귀부하자 북로(북흉노)가 고립되어 약해졌다. 25년(49), 선비가 처음으로 역사(驛使)를 통했다. 그 후 도호 편하 등이 채동에게 나아가 스스로 공로를 드러내길 구하자, 이로 인하여 북흉노 좌이육자의 부를 공격하게 하여, 2천여 급을 참수하였다. 그 후 편하는 해마다 출병하여, 북로(북흉노)를 공격하여, 번번이 수급을 가지고 요동[군]에 나아갔다.”
 
• 참고
『後漢書』 卷90 烏桓鮮卑 建武二十一年 鮮卑與匈奴入遼東 遼東太守祭肜擊破之 斬獲殆盡 事已具肜傳 由是震怖 及南單于附漢 北虜孤弱 二十五年 鮮卑始通驛使 其後都護偏何等詣祭肜求自效功 因令擊北匈奴左伊育訾部 斬首二千餘級 其後偏何連歲出兵擊北虜 還輒持首級詣遼東受賞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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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은 진을 세우고, 정성을 받아들여 공적을 거두었고, 자료번호 : hw.k_0002_003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