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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엄우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제시했으니, 얻고 잃음의 요체가 모두 담겨있었다.

엄우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제시했으니, 얻고 잃음의 요체가 모두 담겨있었다.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망은 [황]위를 찬탈한 뒤, 30만을 징발하여 300일 분의 군량을 가지고 동시에 열 길로 나란히 출격하여 흉노를 끝까지 쫓고자 하였다. 장군 엄우가 다음과 같이 간했다. ‘지금 천하는 양구의 액운주 001
각주 001)
陽九는 음양가들 사이에 통용되던 학설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음양가에서는 4천 6백 17년을 1元으로 보고, 元에 처음 들어가는 106년 동안 가뭄으로 인한 재앙이 9년간 이어진다고 여겼다. 陽九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후 액운을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로 일반화되었는데, 본문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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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나 해마다 기근이 들고 있으며, [이것이]서북 변경지대는 더욱 심합니다. 30만의 무리를 징발하고, 300일 분의 식량을 갖추려면 동쪽으로는 [발]해와 대[산]에서 끌어오고, 남쪽으로는 [장]강과 회[수]에서 취한 연후에야 갖출 수 있으나 그 거리를 계산하면 1년이 되더라도 여전히 다 모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병사들 가운데 먼저 이른 자들은 비바람을 맞으면서 모여 살아야하니 [이 경우] 병사들은 지치고 병장기도 손상되어 세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어려움입니다. 변경이 이미 비어 군량을 바칠 수 없으므로 안으로 군국에서 거둬야 하는데, [군국과 변경 간에 물자가] 서로 이어져 닿지 않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어려움입니다. 한 사람이 300일 동안 [먹는] 식량을 계산하면 건량 18곡이 소모되는데, [이는] 소의 힘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소는 또한 스스로의 식량도 짊어져야만하니 곡의 무게가 더해집니다. [게다가] 오랑캐의 땅은 소금기가 있는 모래밭으로 물과 풀이 부족한 곳이 많습니다. 지난 일도 헤아려보면, 군대가 출격하고 100일이 채 못 되어 소는 틀림없이 죽어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식량이 여전히 많더라도 사람이 짊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어려움입니다. 오랑캐의 땅은 가을과 겨울은 매우 춥고, 봄과 여름은 바람이 심하여 가마솥과 땔감을 많이 가져가야하니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건량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이 사계절을 지날 경우 병사들이 병에 걸릴 염려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전에 오랑캐를 정벌할 때에는 100일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래 하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세력이 견디지 못해서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어려움입니다. 군수품을 스스로 옮기게 하면 날랜 병사가 적어져 빠르게 행동할 수 없어 오랑캐들이 서서히 뒷걸음치며 도망하여도 세력이 미칠 수 없으며 요행히 오랑캐를 만나더라도 또한 군수품에 얽매이게 됩니다. [또한 군수품을 가지고] 만약 험난한 곳을 지날 경우 선두와 후방이 서로 이어져 오랑캐들이 앞과 뒤를 차단할 경우 위태로움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어려움입니다. 백성들의 힘을 대대적으로 사용하고도 반드시 공을 세울 수 없으니 신은 삼가 그것을 근심합니다. 지금 이미 병사를 일으켰으니 응당 먼저 이른 자들을 풀어놓고, 신 [엄]우 등으로 하여금 [적진에] 깊이 들어가 번개처럼 빠르게 급습하게 하여 또한 오랑캐를 응징하고 [그들로 하여금] 경계하게 하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왕]망은 [엄]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천하가 큰 혼란에 빠졌다.”
 
• 참고
『漢書』 卷94下 匈奴 後 單于歷告左右部都尉諸邊王 入塞寇盜 大輩萬餘 中輩數千 少者數百 殺鴈門朔方太守都尉略吏民畜産不可勝數 緣邊虛耗 莽新卽位 怙府庫之富欲立威 乃拜十二部將率 發郡國勇士 武庫精兵各有所屯守 轉委輸於邊 議滿三十萬衆 齎三百日糧 同時十道並出 窮追匈奴 內之于丁令 因分其地 立呼韓邪十五子 莽將嚴尤諫曰 臣聞匈奴爲害 所從來久矣 未聞上世有必征之者也 後世三家周秦漢征之 然皆未有得上策者也 周得中策 漢得下策 秦無策焉 當周宣王時 獫允內侵 至于涇陽 命將征之 盡境而還 其視戎狄之侵 譬猶蚊虻之螫 敺之而已 故天下稱明 是爲中策 漢武帝選將練兵 約齎輕糧 深入遠戍 雖有克獲之功 胡輒報之 兵連禍結三十餘年 中國罷耗 匈奴亦創艾 而天下稱武 是爲下策 秦始皇不忍小恥而輕民力 築長城之固 延袤萬里 轉輸之行 起於負海 疆境旣完 中國內竭 以喪社稷 是爲無策 今天下遭陽九之阨 比年饑饉 西北邊尤甚 發三十萬衆 具三百日糧 東援海代 南取江淮 然後乃備 計其道里 一年尙未集合 兵先至者聚居暴露 師老械弊 勢不可用 此一難也 邊旣空虛 不能奉軍糧 內調郡國 不相及屬 此二難也 計一人三百日食 用糒十八斛 非牛力不能勝 牛又當自齎食 加二十斛 重矣 胡地沙鹵 多乏水草以往事揆之 軍出未滿百日 牛必物故且盡 餘糧尙多 人不能負 此三難也 胡地秋冬甚寒 春夏甚風 多齎釜鍑薪炭 重不可勝 食糒飮水 以歷四時 師有疾疫之憂 是故前世伐胡 不過百日 非不欲久 勢力不能 此四難也 輜重自隨 則輕銳者少 不得疾行 虜徐遁逃 勢不能及 幸而逢虜 又累輜重 如遇險阻 銜尾相隨 虜要遮前後 危殆不測 此五難也 大用民力 功不可必立 臣伏憂之 今旣發兵宜縱先至者 令臣尤等深入霆擊 且以創艾胡虜 莽不聽尤言 轉兵穀如故 天下騷動

  • 각주 001)
    陽九는 음양가들 사이에 통용되던 학설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음양가에서는 4천 6백 17년을 1元으로 보고, 元에 처음 들어가는 106년 동안 가뭄으로 인한 재앙이 9년간 이어진다고 여겼다. 陽九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후 액운을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로 일반화되었는데, 본문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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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우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제시했으니, 얻고 잃음의 요체가 모두 담겨있었다. 자료번호 : hw.k_0002_0010_0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