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역주 한원

[만]백성이 방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두숭의 아룀이 잘 쓰였고,

[만]백성주 001
각주 001)
柏城은 曼柏城으로, 후한 五原郡 曼柏縣의 치소이다. 자세한 위치는 동북아역사재단 편, 『後漢書 外國傳 譯註』 下, 2009, 360쪽, 주 298 참조. 후한대 이곳에 度遼營을 설치하여 남북 흉노가 서로 통교하는 것을 막았다.
닫기
이 방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두숭의 아룀이 잘 쓰였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랑장주 002
각주 002)
使匈奴中郞將을 말한다. 『후한서』 백관지에 따르면, 使匈奴中郞將은 1명이었으며, 관질은 2천 석에 견주었다. 남선우를 감호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2명의 종사를 두었으나 일이 있는 경우 일에 따라 증원할 수 있으며, 掾은 사정에 따라 인원을 정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지28 백관5 참조.
닫기
두숭과 도요장군주 003
각주 003)
도요장군은 후한 명제대 처음 두어졌다. 처음 명제는 남선우 무리에서 새롭게 항복한 자 가운데 두 마음이 있는 자를 방위하려는 목적으로 도요장군을 두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지 이를 파하지 않고 항상 두어 수비하게 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지24 백관1 참조.
닫기
주휘 등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남선우 안국은 고호주 004
각주 004)
여기서 故胡는 남흉노, 구체적으로 좌현왕 사자를 지지하는 무리를 가리키는 듯하다. 『후한서』 남흉노열전에 따르면, 안국은 사자보다 지위는 높았지만 무리 내에서 명망이 없었으며, 이에 안국이 사자를 미워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남흉노열전 참조.
닫기
와 소원합니다주 005
각주 005)
『후한서』에는 ‘疏遠故胡’가 ‘親近新降’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닫기
. [한편] 우부에서 항복한 자들은 함께 안국을 위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을] 배반할 것을 꾀하니 이를 경계하여 방비하기를 청하옵니다.’ 황제가 이를 따랐다. 이때 [두]숭과 [주]휘가 마침내 군사를 징발하여 그 [선우]정주 006
각주 006)
흉노의 선우가 거주하는 중심지가 單于庭이다.
닫기
으로 나아갔다. 안국은 밤에 한의 군대가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장막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리고] 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보복하여 좌현왕주 007
각주 007)
左賢王은 흉노의 관직 중 하나이며, 左屠耆王이라고도 한다.
닫기
사자주 008
각주 008)
師子는 남흉노의 제4대 선우인 䤈僮尸逐侯鞮單于의 아들이다. 남흉노와 한이 연합하여 북흉노를 공격할 때, 좌녹려왕이었으며 안국이 선우에 등극하자 좌현왕이 되었다.
닫기
를 죽이려 하였다. [그런데] 사자가 알아채 여막[의 사람들]을 모두 거느리고 만백성으로 들어갔다. 안국이 추격하여 성 아래에 이르렀으나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었다. 두숭 등이 사람을 보내어 타이르고 깨우쳐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였으나 안국은 듣지 않았다. [안국은] 성이 여전히 함락되지 않자 군사를 이끌고 오원[군]에 주둔하였다. [두]숭과 [주]휘가 이에 여러 군주 009
각주 009)
『後漢書』에 두숭이 황제에게 올린 표문에는 ‘西河郡, 上郡, 安定郡이 안국의 움직임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로보아 諸郡은 이들 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닫기
의 기병을 징발하여 추격을 급박하게 하니 안국의 장인인 골도후 희위 등이 함께 피살될 것을 염려하여 안국을 때려 죽였다.”
 
• 참고
『後漢書』 卷89 南匈奴 六年春 皇甫棱免 以執金吾朱徽行度遼將軍 時單于與中郞將杜崇不相平 迺上書告崇崇諷西河太守令斷單于章 無由自聞 而崇因與朱徽上言 南單于安國疏遠故胡 親近新降 欲殺左賢王師子及左臺且渠劉利等 又右部降者謀共迫脅安國 起兵背畔 請西河 上郡 安定爲之儆備 和帝下公卿議 皆以爲 蠻夷反覆 雖難測知 然大兵聚會 必未敢動搖 今宜遣有方略使者之單于庭 與杜崇朱徽及西河太守幷力 觀其動靜 如無它變 可令崇等就安國會其左右大臣 責其部衆橫暴爲邊害者 共平罪誅 若不從命 令爲權時方略 事畢之後裁行客賜 亦足以威示百蠻 帝從之 於是徽崇遂發兵造其庭 安國夜聞漢軍至 大驚 棄帳而去 因擧兵及將新降者欲誅師子 師子先知 乃悉將廬落入曼柏城 安國追到城下 門閉不得入 朱徽遣吏曉譬和之 安國不聽 城旣不下 乃引兵屯五原 崇徽因發諸郡騎追赴之急 衆皆大恐 安國舅骨都侯喜爲等慮幷被誅 乃格殺安國

  • 각주 001)
    柏城은 曼柏城으로, 후한 五原郡 曼柏縣의 치소이다. 자세한 위치는 동북아역사재단 편, 『後漢書 外國傳 譯註』 下, 2009, 360쪽, 주 298 참조. 후한대 이곳에 度遼營을 설치하여 남북 흉노가 서로 통교하는 것을 막았다. 바로가기
  • 각주 002)
    使匈奴中郞將을 말한다. 『후한서』 백관지에 따르면, 使匈奴中郞將은 1명이었으며, 관질은 2천 석에 견주었다. 남선우를 감호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2명의 종사를 두었으나 일이 있는 경우 일에 따라 증원할 수 있으며, 掾은 사정에 따라 인원을 정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지28 백관5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도요장군은 후한 명제대 처음 두어졌다. 처음 명제는 남선우 무리에서 새롭게 항복한 자 가운데 두 마음이 있는 자를 방위하려는 목적으로 도요장군을 두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지 이를 파하지 않고 항상 두어 수비하게 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지24 백관1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여기서 故胡는 남흉노, 구체적으로 좌현왕 사자를 지지하는 무리를 가리키는 듯하다. 『후한서』 남흉노열전에 따르면, 안국은 사자보다 지위는 높았지만 무리 내에서 명망이 없었으며, 이에 안국이 사자를 미워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후한서』 남흉노열전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5)
    『후한서』에는 ‘疏遠故胡’가 ‘親近新降’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흉노의 선우가 거주하는 중심지가 單于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左賢王은 흉노의 관직 중 하나이며, 左屠耆王이라고도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8)
    師子는 남흉노의 제4대 선우인 䤈僮尸逐侯鞮單于의 아들이다. 남흉노와 한이 연합하여 북흉노를 공격할 때, 좌녹려왕이었으며 안국이 선우에 등극하자 좌현왕이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9)
    『後漢書』에 두숭이 황제에게 올린 표문에는 ‘西河郡, 上郡, 安定郡이 안국의 움직임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로보아 諸郡은 이들 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만]백성이 방비를 갖추고 있었으니, 두숭의 아룀이 잘 쓰였고, 자료번호 : hw.k_0002_0010_0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