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에 부를 설치하니, 골도[후]의 진영이 더욱 견고해졌고,
서하에 부를 설치하니, 골도[후]의 진영이 더욱 견고해졌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남선우가 서하[군]에 거주한 뒤에도 역시 여러 부의 왕을 차례로 두어 [적을] 막고 지키는 것을 돕도록 했다. 한씨(한지)골도후로를 북지[군]에 주둔시켰고, 우현왕은 삭방[군]에 주둔하게 했으며, 당우골도후는 오원[군]에 주둔하게 했으며, 낭씨(낭지)골도후는 정양[군]에 주둔하게 했으며, 좌남장군은 안문[군]에 주둔하게 했으며, 율적골도후는 대군에 주둔하도록 했다. 모두 부의 무리를 거느리고 [한의] 군현을 위해 정탐하고 순라하는 귀와 눈이 되었다. 북선우는 두려워서 자못 약탈했던 한인들을 돌려보내 선의를 보였다. 약탈병은 매번 남흉노[의 영역] 주변에 이르렀다가 돌아가면서 경계초소를 지나갔는데, 번번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로였던 욱건일축을 공격하여 멸망시키려고 할 뿐, 감히 한인을 침범하려는 것은 아니다.’”
• 참고
『後漢書』 卷89 南匈奴 南單于既居西河 亦列置諸部王 助爲扞戍 使韓氏骨都侯屯北地 右賢王屯朔方 當于骨都侯屯五原 呼衍骨都侯屯雲中 郎氏骨都侯屯定襄 左南將軍屯鴈門 栗籍骨都侯屯代郡 皆領部眾爲郡縣偵羅耳目 北單于惶恐 頗還所略漢人 以示善意 鈔兵每到南部下 還過亭候 輒謝曰 自擊亡虜薁鞬日逐耳 非敢犯漢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