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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감천의 밤이 밝아졌으니, 북방에서 올린 봉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감천의 밤이 밝아졌으니, 북방에서 올린 봉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군신선우가 즉위하니 4년이 지나 흉노가 다시 화친을 끊고 대거 상군과 운중[군] 각각 3만 명의 기병으로 들어와 죽이고 노략질한 바가 매우 많았다. 이에 한은 3명의 장군으로 하여금 북쪽 땅에 주둔시키고, 대에서는 구주[산]에 주둔시키고, 조에서는 비호구에 주둔시켰으며 변경을 따라 또한 각기 견고하게 지키게 하여 흉노의 침입에 대비했다. 또 3명의 장군을 두어서 장안 서쪽의 세류와 위수 북쪽의 극문·패상에 진을 쳐 흉노에 대비하게 했다. 흉노의 기병이 대의 구주[산] 주변으로 들어오니 봉화불이 감천에서 장안까지 통했다. 수개월 동안 밤이 모두 밝았다. 한의 군사들이 변경에 이르니 흉노가 또한 멀고 추운 곳으로 가버려서 한의 군사도 철수했다.”
 
• 참고
『漢書』 卷94上 匈奴 軍臣單于立歲餘 匈奴復絕和親 大入上郡雲中各三萬騎 所殺略甚衆 於是漢使三將軍軍屯北地 代屯句注 趙屯飛狐口 緣邊亦各堅守以備胡寇 又置三將軍 軍長安西細柳渭北棘門霸上以備胡 胡騎入代句注邊 烽火通於甘泉長安 數月 漢兵至邊 匈奴亦遠塞 漢兵亦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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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의 밤이 밝아졌으니, 북방에서 올린 봉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료번호 : hw.k_0002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