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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왕(秦惠王)이 파씨를 만이의 군장으로 삼고 군장 및 민들의 부역을 정해줌

  • 국가
    파군·남군만(巴郡·南郡蠻)
진혜왕(秦惠王) 주 001
각주 001)
秦惠王: 秦 惠文王으로 秦 孝公의 아들로, 기원전 337~기원전 310년까지 재위하였는데, 처음으로 王을 칭하였다. 孝公 때 變法을 시행했던 商鞅을 숙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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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중(巴中)지방을 겸병하자,주 002
각주 002)
『史記』 권5 「秦本紀」에 따르면 秦 惠文王 23년 진나라 장수 司馬窄이 蜀을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사 외에는 열전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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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를 만이의 군장으로 삼아, 대대로 의 공주에 장가들었다. 그 백성들의 작(爵)은 불갱(不更)주 003
각주 003)
不更: 秦나라에서 수여하는 爵位의 명칭으로 밑에서 4번째 등급이다. 『史記』 「秦本紀」의 集解에서 인용한 『漢書』에 따르면, 商鞅이 진나라에서 법을 시행하면서 적과 싸워 적의 수급 하나를 벤 자에게 한 등급씩 작위를 하사였는데,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50석 분량의 수급을 베어야 했다. 가장 낮은 작위가 公士에서 시작하여 20위인 徹侯를 정점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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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해당하였는데, 죄가 있더라도 작으로 면제받을 수 있었다.주 004
각주 004)
爵除: 爵은 功勳의 의미가 있어 일정한 정도의 범죄에 대해 爵位로 이를 갈음하여 죄를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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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군장은 매해 부(賦)로 2,016전(錢)을, 3년마다 한 차례씩 의부(義賦) 1,800錢을 냈다. 그 민(民)들은 매호마다 가포(幏布) 8장(丈) 2척(尺)과 닭깃털로 만든 화살 30후(鍭)주 005
각주 005)
幏布, 鍭: 李賢注에서 『說文』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幏’라는 것은 南郡의 蠻夷가 내는 布이다. 『毛詩』에서 ‘四鍭가 모두 똑같네.’라고 하고 『儀禮』에서 ‘矢鍭는 한 종류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鄭玄은 ‘鍭는 뜻이 候와 같으니 사물을 살펴서 그것을 쏜다는 뜻이다. 삼십후는 일백사십구이다. (說文: 「幏, 南郡蠻夷布也.」 音公亞反. 毛詩: 「四鍭旣均.」 儀禮: 「矢鍭一乘.」 鄭玄曰: 「鍭猶候也, 候物而射之也.」 三十鍭, 一百四十九.). 이를 종합해 보면 ‘鍭’는 ‘翭’와 통한다. 설문에서 翭는 깃털을 세는 단위라고 하였고, 『方言』에서도 후는 깃털을 세는 단위라고 하였으니, ‘鍭’를 글자 그대로 쇠촉이 달린 화살로 봐서는 안 되고, 여기서는 단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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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냈다.주 006
각주 006)
蠻夷들의 賨錢에 대해 張家山漢簡 「秦書」의 案例 I에 “變〈蠻〉夷 大男子. 歲出五十六錢以當徭賊 不當爲屯.”이라는 구절이 발견된다. 또 『文選』권6에 수록된 左思의 〈魏都賊〉의 李善注에 인용된 『風俗通義』에는 “廩君之巴氏 出幏布八丈”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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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漢朝)가 일어났을 때, 남군 태수 근강(靳彊) 주 007
각주 007)
靳彊: 漢 建國의 개국공신. 『漢書』 권16 「高惠高后文功臣表」에 따르면 靳彊은 郎中騎 1천 명으로 고조가 아직 沛公의 신분일 때 轢陽에서 거병하여 項羽를 공격했고, 나중에 中尉가 되어 項羽의 부장인 鍾離昧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樊噲 등과 더불어 高祖를 직접 호종하였다. 공으로 汾陽 嚴侯에 봉해졌으며, 고조 7년(전196)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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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고사와 똑같이 하기를 청하였다.

  • 각주 001)
    秦惠王: 秦 惠文王으로 秦 孝公의 아들로, 기원전 337~기원전 310년까지 재위하였는데, 처음으로 王을 칭하였다. 孝公 때 變法을 시행했던 商鞅을 숙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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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史記』 권5 「秦本紀」에 따르면 秦 惠文王 23년 진나라 장수 司馬窄이 蜀을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사 외에는 열전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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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不更: 秦나라에서 수여하는 爵位의 명칭으로 밑에서 4번째 등급이다. 『史記』 「秦本紀」의 集解에서 인용한 『漢書』에 따르면, 商鞅이 진나라에서 법을 시행하면서 적과 싸워 적의 수급 하나를 벤 자에게 한 등급씩 작위를 하사였는데,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50석 분량의 수급을 베어야 했다. 가장 낮은 작위가 公士에서 시작하여 20위인 徹侯를 정점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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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爵除: 爵은 功勳의 의미가 있어 일정한 정도의 범죄에 대해 爵位로 이를 갈음하여 죄를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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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幏布, 鍭: 李賢注에서 『說文』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幏’라는 것은 南郡의 蠻夷가 내는 布이다. 『毛詩』에서 ‘四鍭가 모두 똑같네.’라고 하고 『儀禮』에서 ‘矢鍭는 한 종류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鄭玄은 ‘鍭는 뜻이 候와 같으니 사물을 살펴서 그것을 쏜다는 뜻이다. 삼십후는 일백사십구이다. (說文: 「幏, 南郡蠻夷布也.」 音公亞反. 毛詩: 「四鍭旣均.」 儀禮: 「矢鍭一乘.」 鄭玄曰: 「鍭猶候也, 候物而射之也.」 三十鍭, 一百四十九.). 이를 종합해 보면 ‘鍭’는 ‘翭’와 통한다. 설문에서 翭는 깃털을 세는 단위라고 하였고, 『方言』에서도 후는 깃털을 세는 단위라고 하였으니, ‘鍭’를 글자 그대로 쇠촉이 달린 화살로 봐서는 안 되고, 여기서는 단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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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蠻夷들의 賨錢에 대해 張家山漢簡 「秦書」의 案例 I에 “變〈蠻〉夷 大男子. 歲出五十六錢以當徭賊 不當爲屯.”이라는 구절이 발견된다. 또 『文選』권6에 수록된 左思의 〈魏都賊〉의 李善注에 인용된 『風俗通義』에는 “廩君之巴氏 出幏布八丈”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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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靳彊: 漢 建國의 개국공신. 『漢書』 권16 「高惠高后文功臣表」에 따르면 靳彊은 郎中騎 1천 명으로 고조가 아직 沛公의 신분일 때 轢陽에서 거병하여 項羽를 공격했고, 나중에 中尉가 되어 項羽의 부장인 鍾離昧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樊噲 등과 더불어 高祖를 직접 호종하였다. 공으로 汾陽 嚴侯에 봉해졌으며, 고조 7년(전196)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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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진혜왕(秦惠王), 근강(靳彊)
지명
파중(巴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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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왕(秦惠王)이 파씨를 만이의 군장으로 삼고 군장 및 민들의 부역을 정해줌 자료번호 : jo.k_0003_0116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