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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판합부숙녜(坂合部宿禰; 사카히베노스쿠네)

판합부숙녜(坂合部宿禰; 사카히베노스쿠네)
 화명명(火明命)의 8세손 이배족니(邇倍足尼; 니헤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주석】
1. 판합부숙녜(坂合部宿禰)
판합부숙녜의 판합부(坂合部; 사카히베)는 경부(境部; 사카히베) 또는 계부(堺部; 사카히베)로도 표기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2월 기묘조에서 경부련(境部連)이 숙녜를 사성받고 있는 점에서 판합부숙녜의 옛 씨성은 경부련(境部連) 또는 판합부련(坂合部連; 사카히베노무라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래 연구에서는 판합부(坂合部) 또는 경부(境部)는 경계를 확정하는 업무를 담당한 부민이었고, 판합부련 또는 경부련은 이를 관할하는 반조씨족이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판합부련씨에 관해서는 『일본서기』 에 모두 5명이 보인다. 처음은 웅략천황 즉위전기로, 안강천황이 시해당한 후에 일어난 왕위 계승 싸움에서 웅략천황에게 살해당한 웅략천황의 형 판합흑언황자(坂合黑彦皇子)의 유해를 안고 불타 죽은 황자의 측근 판합부련지숙녜(坂合部連贄宿禰)가 보인다. 이를 보면 판합부련은 판합흑언황자에게 소속된 부민이었을 것이다. 그 후 판합부련씨가 보이는 것은 『일본서기』 백치 4년(653) 5월임술조로, 경부련석적(境部連石積, 坂合部連磐積으로도 표기됨)이 견당사로 파견되었다. 석적은 그 후 천지천황 4년(665)에도 당에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천무천황 11년(682)에는 신자(新字) 1부(部) 44권을 편찬하였다. 684년에 숙녜를 사성받은 후 천무천황 14년(685) 9월 신유조에 경부숙녜석적(境部宿禰石積)은 천무천황에게 윗옷과 바지를 하사받았다.
한편 판합부련석포(坂合部連石布, 또는 坂合部連磐鍬로도 표기함)는 제명천황 2년(656)9월에 고구려에 파견할 사신단의 부사로 임명되었고, 제명 5년(659) 7월에는 동족 판합부련도적(坂合部連稻積)과 함께 당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판합부련락(坂合部連藥)은 658년 11월 유간황자 모반 사건에 연좌되어 미장국(尾張國)에 유배되었다가, 672년 임신의 난이 일어났을 때 중대형왕자(천지왕)의 아들 대우왕자 측의 총지휘관으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속일본기』 에는 모두 7명의 판합부숙녜씨가 보이고, 『일본문덕천황실록』 과 『일본삼대실록』 에서 각각 한 명씩 보인다. 그 밖에 『만엽집』 17권 3907번가에 경부숙녜노마려(境部宿禰老麻呂)가 보인다. 고문서에서는 천평 3년(731) 「월전국정세장(越前國正稅帳)」(『대일본고문서』 1-439)에 판합부숙녜갈목마려(坂合部宿禰葛木麻呂)가 보이고, 천평승보 9년(757) 정월 4일부 「좌경직감상문서(左京職勘上文書)」(『대일본고문서』4-120)에 판합부숙녜우족(坂合部宿禰友足)이 보인다.
2. 화명명(火明命)
화명명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하) 「미장숙녜」 조(400) 참조.
3. 이배족니지후(邇倍足尼之後)
『신찬성씨록』우경 신별(하) 「판합부숙녜」 조(469)에서는 화란강명(火闌降命)의 8세손 이배족니(邇倍足尼; 니헤노스쿠네)라고 적고 있다. 이배족니는 이 외에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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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합부숙녜(坂合部宿禰; 사카히베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10_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