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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잔적(殘賊) 소탕을 위해 진격을 청하며 이여백(李如柏)에게 보낸 게첩(揭帖)

57. 李都督前揭
  • 출전
    事大文軌 卷3: 63b-64b / 『壬辰倭亂 史料叢書 1~8 對明外交』(국립진주박물관, 2002 영인본) 1책: 128~130쪽
57. 李都督前揭주 001
각주 001)
본 게첩은 『宣祖實錄』 卷36, 宣祖 26年 3月 辛酉(6日)에 있다. 선조가 협수도독부(恊守都督府) 이여백(李如栢)과 협수부총부(恊守副摠府) 장세작(張世爵)에게 보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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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人仗天子威靈, 恊同大緫爺, 不崇朝而拔주 002
각주 002)
『선조실록』에는 ‘拔’이 ‘據’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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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巢穴之固, 欲주 003
각주 003)
『선조실록』에는 ‘欲’이 ‘砍’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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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燒溺之餘, 漏網餘魂, 逃死不暇. 先聲所及, 不戰而奔, 黃海一路曁開城舊都, 指顧之間, 復爲我有. 功烈之巍, 誠無讓於古名將矣. 席此大勢, 進復王京, 殆無異坂上走丸. 而不幸小邦, 當蕩敗焚燹之後, 公私赤立. 逃竄未集, 搬運糧蒭, 槩不以時, 致令兵馬未免飢損. 非不知姑退休養, 誠非獲已. 第惟箚營空城, 已消半月, 而館御供頓甚非, 所稱操鍊閑暇, 想必無以自遣也.주 004
각주 004)
『선조실록』에는 ‘操鍊閑暇 想必無以自遣也’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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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念及此, 慚悚交中, 目今見糧調度告罄, 善後之策, 罔知攸濟. 而近日開城地方, 運到米豆, 約可二萬餘石, 足句半月之支. 與其老師閑地, 坐貽艱食之困, 曷若就餉近甸, 以畢垂成之功乎. 急之則無以爲計, 緩之則得以成奸, 乃倭之情則利在速戰, 較然明甚. 况添兵分搶, 聚衆拒敵等語, 旣出於活捉倭奴之供辭, 其兇謀詭計, 不一而足. 待彼之不可勝而後動, 似주 005
각주 005)
『선조실록』에는 ‘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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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計之得者. 進兵不於此時, 而烏乎可㢤. 若遲延時月, 蹉失機會, 則非但前說之可虞, 兵久不解, 民疲奔命,주 006
각주 006)
『선조실록』에는 ‘非但前說之可虞 兵久不解 民疲奔命’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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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失東作之期, 永絶西成之望, 賊雖遁歸, 人皆餓死, 不待智者而知也. 小邦之情, 不已窮且戚乎. 一擧全勝,주 007
각주 007)
『선조실록』에는 ‘全勝’이 ‘合戰’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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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在大人一擧措之間. 玆不敢避煩聒而哀籲. 再造敝邦, 重活遺黎, 惟大人之是望焉.주 008
각주 008)
『선조실록』에는 말미에 “삼가 갖추어 답장합니다.(謹具以復)”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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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본 게첩은 『宣祖實錄』 卷36, 宣祖 26年 3月 辛酉(6日)에 있다. 선조가 협수도독부(恊守都督府) 이여백(李如栢)과 협수부총부(恊守副摠府) 장세작(張世爵)에게 보낸 글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선조실록』에는 ‘拔’이 ‘據’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선조실록』에는 ‘欲’이 ‘砍’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선조실록』에는 ‘操鍊閑暇 想必無以自遣也’ 부분이 없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선조실록』에는 ‘似’가 없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선조실록』에는 ‘非但前說之可虞 兵久不解 民疲奔命’ 부분이 없다. 바로가기
  • 각주 007)
    『선조실록』에는 ‘全勝’이 ‘合戰’으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선조실록』에는 말미에 “삼가 갖추어 답장합니다.(謹具以復)”로 끝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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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적(殘賊) 소탕을 위해 진격을 청하며 이여백(李如柏)에게 보낸 게첩(揭帖) 자료번호 : sdmg.d_0001_0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