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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박이종이 나무 사자를 만들어 울릉도를 복속시키다

사료해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승려 일연(一然)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사서(史書)이다. 지철노왕조(智哲老王條)에는 512년(지증왕 13)에 있었던 신라의 우산국 정복에 관한 기록이 있다. 왕이 이찬(伊飡) 박이종 (朴伊宗)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우산국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박이종은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 위에 일렬로 세워 놓고 그들을 위협함으로써 우산국을 항복시켰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이찬(伊飡) 이사부 (異斯夫)가 우산국을 항복시켰다고 되어 있으나 정복 내용은 동일하다.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부속도서들을 세력권 내에 두었던 소국(小國)으로서 삼국시대 이전에는 독립적으로 우산국이라는 고대 부족 읍락국가를 이루고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모든 소도서(小島嶼)를 포함한다. 즉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서기 512년(지증왕 13년)에 울릉도가 신라에 항복함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권 내에 편입되게 된 것이다.
원문
又 阿瑟羅州 仐 溟州 東海中便風二日程有 亐陵島 今作 羽陵 周 迴二万六千七百三十歩島夷恃其水深憍慠不臣王命伊喰 朴伊宗 将兵討之宗作木偶師子載於大艦之上威之云不降則放此獸島夷畏而降賞 伊宗 爲州伯
번역문
또 아슬라주(阿瑟羅州)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순풍으로 이틀 걸리는 거리에 울릉도(亐陵島)가 있었다. 둘레가 2만 6천 7백 30보였는데 섬사람[島夷]들은 그 바닷물이 깊은 것을 믿고 교만하여 신하되기를 거부하였다. 왕은 이찬(伊飡) 박이종 (朴伊宗)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박이종 은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 위에 일렬로 세워 놓고 그들을 위협하며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놓겠다.” 하자 섬사람들은 두려워 항복하였다. [왕은] 이종 에게 상을 내려 주백(州伯:주의 장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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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종이 나무 사자를 만들어 울릉도를 복속시키다 자료번호 : sd.d_008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