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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야강(婼羌)에 대한 소개

  • 국가
    야강국(婼羌國)
양관을 나서서 가까운 것부터 시작하면 야강(婼羌) 주 001
각주 001)
婼의 발음에 대해서 “婼의 音은 兒이다”라고 하나 孟康에 따르면 nzie로 읽을 수 있지만, “音而遮反”이라고 한 顔師古에 따르면 nzi와 tsia의 反切音 즉 nzia로 읽게 된다. Karlgren(1957)에 따르면 그 음은 t’iak이 된다. 婼은 중국 측 기록에서 『左傳』과 『穀梁傳』에 기원전 7세기 魯國의 한 귀족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羌族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Hulsewé, 1979 : 80 참조). 婼羌은 곤륜산맥에서 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岑仲勉(1981 : 1-6)은 이 지명이 후일 야르칸드(Yarkand, 葉爾羌)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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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야강의 국왕은 ‘거호래왕(去胡來王)’주 002
각주 002)
去胡來王 : 顔注는 “胡戎을 멀리하고 漢에 來附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고 했고, 顧炎武는 이같이 뜻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 바 있다. 한편 ‘去胡來’라는 표현은 현지음을 한자로 표시하면서 동시에 뜻을 이룰 수 있는 철자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岑仲勉, 1981 : 5). 余太山(2005 : 77-78)은 이 말이 Tochari를 옮긴 것으로 보는데, 단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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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칭한다. 양관에서 1,800리,주 003
각주 003)
陽關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곳(‘近者’)이 婼羌이라고 했지만 相距는 1,800里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이어 나오는 鄯善에 관한 기록 즉 陽關에서 1,600里 떨어져 있다는 내용과 상치된다. 이러한 모순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漢書』에 기록된 里數가 때로는 實測에 근거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구간별 거리를 合算하여 도출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즉 陽關에서 鄯善까지의 거리 1,600里는 馬行으로 16일 걸린다는 實測에 근거한 것이지만, 陽關에서 婼羌까지의 거리는 직통거리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陽關-鄯善에다가 鄯善-婼羌의 2일거리(=200里)를 合算하여 나온 것이다. 이것은 당시 陽關을 나서서 白龍堆를 거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 鹽澤 부근의 樓蘭(=鄯善)이고, 婼羌은 鄯善을 경유해서만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세 지점의 방위를 고려하면 陽關에서 婼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더 가까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본문에서와 같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婼羌에 대하여 “辟在西南, 不當孔道”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사정을 말해 준다. 물론 婼羌을 현재의 若羌으로 볼 경우 鄯善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시의 婼羌은 그보다 훨씬 더 동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Herrmann, 1966 : 16의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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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에서 6,300리 떨어져 있으며, 서남쪽에 동떨어져 있고[辟] 대도[孔道] 연변에 있지 않다.주 004
각주 004)
顔注 : “辟은 僻으로 읽는다. 孔道는 山險을 뚫어서 길을 낸 것을 말하니 오늘날 穴徑이라 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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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450, 인구는 1,750, 병사는 500이다. 서쪽으로 차말(且末)과 접한다. 가축을 따라 수초를 찾아다니며, 농사를 짓지 않고 선선차말의 곡식에 의존한다. 산에는 철이 나며 스스로 무기를 만드는데, 무기에는 활, 창, 단검[服刀], 검, 갑옷 등이 있다. 서북으로는 선선에 이르며, 그렇게 되면 대도를 만나게 된다.

  • 각주 001)
    婼의 발음에 대해서 “婼의 音은 兒이다”라고 하나 孟康에 따르면 nzie로 읽을 수 있지만, “音而遮反”이라고 한 顔師古에 따르면 nzi와 tsia의 反切音 즉 nzia로 읽게 된다. Karlgren(1957)에 따르면 그 음은 t’iak이 된다. 婼은 중국 측 기록에서 『左傳』과 『穀梁傳』에 기원전 7세기 魯國의 한 귀족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羌族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Hulsewé, 1979 : 80 참조). 婼羌은 곤륜산맥에서 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岑仲勉(1981 : 1-6)은 이 지명이 후일 야르칸드(Yarkand, 葉爾羌)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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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去胡來王 : 顔注는 “胡戎을 멀리하고 漢에 來附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고 했고, 顧炎武는 이같이 뜻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 바 있다. 한편 ‘去胡來’라는 표현은 현지음을 한자로 표시하면서 동시에 뜻을 이룰 수 있는 철자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岑仲勉, 1981 : 5). 余太山(2005 : 77-78)은 이 말이 Tochari를 옮긴 것으로 보는데, 단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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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陽關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곳(‘近者’)이 婼羌이라고 했지만 相距는 1,800里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이어 나오는 鄯善에 관한 기록 즉 陽關에서 1,600里 떨어져 있다는 내용과 상치된다. 이러한 모순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漢書』에 기록된 里數가 때로는 實測에 근거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구간별 거리를 合算하여 도출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즉 陽關에서 鄯善까지의 거리 1,600里는 馬行으로 16일 걸린다는 實測에 근거한 것이지만, 陽關에서 婼羌까지의 거리는 직통거리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陽關-鄯善에다가 鄯善-婼羌의 2일거리(=200里)를 合算하여 나온 것이다. 이것은 당시 陽關을 나서서 白龍堆를 거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 鹽澤 부근의 樓蘭(=鄯善)이고, 婼羌은 鄯善을 경유해서만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세 지점의 방위를 고려하면 陽關에서 婼羌까지의 거리가 실제로는 더 가까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본문에서와 같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婼羌에 대하여 “辟在西南, 不當孔道”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사정을 말해 준다. 물론 婼羌을 현재의 若羌으로 볼 경우 鄯善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시의 婼羌은 그보다 훨씬 더 동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Herrmann, 1966 : 16의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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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顔注 : “辟은 僻으로 읽는다. 孔道는 山險을 뚫어서 길을 낸 것을 말하니 오늘날 穴徑이라 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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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지명
야강(婼羌), 야강, 장안, 차말(且末), 선선, 차말, 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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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강(婼羌)에 대한 소개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