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흡은 인을 두터이했으니, 사당에 영령을 나타내었다.
장흡은 인을 두터이했으니, 사당에 영령을 나타내었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장흡이 파군태수가 되자 정치와 교화가 분명하고 공평하여, 이인과 화합하는 데 이르렀다. [그] 지위에서 17년간 재직하다 사망하자, 이인들이 애도하기를 부모를 장사지내는 것과 같았다. 소기주 001의 노인 200여 명이, 양을 갖추어 상례를 치르고, [장]흡의 본[향]인 안한주 002에 이르러, 분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기쁘게 사당을 세웠다”라고 한다.
• 참고
『後漢書』 卷86 邛都夷 永平元年 姑復夷復叛 益州刺史發兵討破之 斬其渠帥 傳首京師 後太守巴郡張翕 政化淸平 得夷人和 在郡十七年 卒 夷人愛慕 如喪父母 蘇祈叟二百餘人 齎牛羊送喪 至翕本縣安漢 起墳祭祀詔書嘉美 爲立祠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