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3-4단원 3차시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성리학과 조선 사회
성리학과 일본 사회
성리학과 베트남
학문의 교류
성리학의 영향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1. 성리학과 조선 사회
-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법의 보급
- 부모 사망시 3년상
- 가묘나 사당 설치
-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를 전국에 설치
- 성리학적 사회 규범의 확산 : 조선 중기 이후
- 장자 중심의 제사 지내기
- 동성 불혼제
- 친영제(여성이 남성 집으로 들어가는 혼인)
각주 186)
장자 중심의 제사 지내기
주 187적자가 있으면 지손이 제사를 받들지 못하는 것이 마땅한 예임에도 자기 어버이의 기일을 맞아 각 집에서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풍속은 예법에 지극히 어긋나는 것이므로 마땅히 금하도록 하소서.
-"중종실록"
-"중종실록"중종실록중종실록
-"중종실록"
-"중종실록"중종실록중종실록
각주 187)
장자 중심의 제사 지내기
친영의 예법을 왕실에서 먼저 실시하여 사대부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라. 파원군 윤평이 숙신 옹주를 친히 맞아가니 본국에서의 친영이 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세종실록"
-"세종실록"세종실록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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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2. 성리학과 조선 사회
- 음양의 원리에 따른 가옥 구조
- 안채(여성), 사랑채(남성), 사당·향교 등의 태극무늬
- 의학의 발전에 기여
- 주술적인 치료법 부정
- 약재의 연구를 중시 → <향약구급방>,<향약집성방>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2. 성리학과 일본 사회
- 신토와 불교의 영향이 강했던 일본 사회에 성리학이 끼친 영향은 극히 제한적
- 전통적 의례의 지속 : 결혼 등은 신토에 따라, 장례와 제사는 불교식으로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3. 성리학과 베트남
- 16세기 초 레 왕조의 분열
- 막씨의 왕위 찬탈 : 50여 년에 걸친 레씨와의 전쟁 → 군사력 확충에 주력
- 유학의 쇠퇴
- 과거 합격자 수의 격감
- 유학자들의 영향력 미약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4. 학문의 교류
- 고려와 원
- 만권당 : 충선왕이 원의 수도에 세운 독서당, 양국 학자들이 활발하게 교류 → 성리학 수용에 큰 영향
- 조선과 명·청
- 사신의 신분으로 명·청 학자와 교류(홍대용 등)
- 조선과 베트남
- 중국에 간 사신을 통해 서로 교류 : 필담을 활용
- 조선과 일본
- 통신사를 통해 시문, 서예, 학문 교류
각주 189)
조선과 명·청
이이가 명나라의 사신을 접견하였을 때 사신이 말하기를, (중략)“그렇다면 그대가 바로 천도책(이이가 과거에 장원 급제했을 때의 답안)을 지은 사람인가?”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니 두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오면서 이이의 예에 대한 논의와 화답한 시를 보고 특례로 정중히 대하였으며, 모든 서한에 반드시 율곡 선생이라 칭하였다.
-"선조실록"
-"선조실록"선조실록선조실록
-"선조실록"
-"선조실록"선조실록선조실록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5. 성리학의 영향
- 지역별 차이
- 명·청과 조선에는 큰 영향
- 일본과 베트남에는 제한적
- 공통적 영향
- 충·효·예와 같은 가치관 전파,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유 심화
성리학과 각국 사회의 변화
성리학과 조선사회
성리학의 영향
-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법 보급
- 중기 이후 성리학적 사회 규범의 확산
- 음양의 원리에 따른 가옥 구조
- 의학 발전에 기여
- 명·청·조선에 큰 영향, 일본·베트남에는 제한적 영향
- 충·효·예와 같은 가치관 전파,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유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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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86)
장자 중심의 제사 지내기적자가 있으면 지손이 제사를 받들지 못하는 것이 마땅한 예임에도 자기 어버이의 기일을 맞아 각 집에서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풍속은 예법에 지극히 어긋나는 것이므로 마땅히 금하도록 하소서.
-"중종실록"
-"중종실록"중종실록중종실록 -
각주 187)
장자 중심의 제사 지내기친영의 예법을 왕실에서 먼저 실시하여 사대부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라. 파원군 윤평이 숙신 옹주를 친히 맞아가니 본국에서의 친영이 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세종실록"
-"세종실록"세종실록세종실록 - 각주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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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89)
조선과 명·청이이가 명나라의 사신을 접견하였을 때 사신이 말하기를, (중략)“그렇다면 그대가 바로 천도책(이이가 과거에 장원 급제했을 때의 답안)을 지은 사람인가?”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니 두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오면서 이이의 예에 대한 논의와 화답한 시를 보고 특례로 정중히 대하였으며, 모든 서한에 반드시 율곡 선생이라 칭하였다.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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