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위(室韋)의 원류·위치·기후 및 풍속에 대한 설명
실위(室韋)는 거란(契丹)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別類]이다. 노월하(峱越河) 북쪽에 살았고 그[들의] 나라는 [당의] 경사에서 동북쪽으로 칠천 리에 있었다. 동쪽으로는 흑수말갈(黑水靺鞨)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돌궐(突厥)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거란(契丹)과 접했으며 북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 나라에는 군장(君長)은 없고 대수령(大首領) 열일곱 명이 있었는데 모두 ‘막하불(莫賀弗)’이라 불렀고 대대로 [그 무리를] 지배했으나 [결국에는] 돌궐(突厥)에 항복하였다.
[그들이 사용하던] 병기(兵器)에는 각궁(角弓)과 고시(楛矢)가 있었고 활쏘기를 특히 잘해 때마다 모여 과렵(戈獵)을 행하고 일이 끝나면 흩어졌다. 그 사람들은 대대로 그 땅에 살았는데 조세를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때로 [그들은] 소실(小室)을 만들고 가죽으로 [그] 위를 덮었으며, 서로 모여 살았는데 수십백 가(家)에 이르렀다.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금[으로 만든] 칼은 쓰지 않았으며 사람이 [쟁기를] 끌어 씨를 뿌렸고 소는 [고삐를] 풀지 않고 이용했다. 여름에는 안개와 비가 많았고 겨울에는 서리와 싸라기눈이 많았다. [그들이 기르던] 가축은 거의 개와 돼지였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르던] 가축을 [잡아] 먹거나 그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했고 남자와 여인들은 두루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피발(被髮)과 좌임(左袵)주 001을 하고 그[들 중] 집안이 부유한 자는 오색의 여러 가지 비단을 목 뒤쪽에 드리웠다. 혼인할 때 예법은 남자가 먼저 여자 집으로 가서 삼 년 동안 일꾼으로 일하면 그 신부를 맞이할 수 있었다[親迎]. 일꾼으로 일한 날[수]가 이미 채워지면 여자 [쪽] 집에서는 그 재물을 나누[어 주었]고 부부가 한 수레에 [재물을] 싣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며 함께 [남자 집으로] 돌아갔다.
무덕(武德) 연간에는 특산물을 바쳤다. 정관(貞觀) 3년(629), 사자를 보내 풍초(豐貂)를 바쳤는데 이로부터 조공이 끊이지 않았다.
색인어
- 지명
- 실위(室韋), 거란(契丹), 노월하(峱越河), 당, 경사, 흑수말갈(黑水靺鞨), 돌궐(突厥), 거란(契丹), 돌궐(突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