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보(李大輔)가 대신 오소매락(粵蘇梅落)을 당조(唐朝)에 보내 항복을 청함
개원(開元) 3년(715), 대보가 그의 대신 오소매락(粵蘇梅落)을 보내와 항복하기를 청하자 조칙을 내려 그들[이 살던] 땅에 다시 요락주(饒樂州)를 세우고 대보를 봉해 요락군왕(饒樂郡王)으로 삼고 곧 이어 좌금오원외대장군(左金吾員外大將軍)·요락주도독(饒樂州都督)에 제수했다.
5년(717), 대보가 거란의 우두머리인 송막군왕(松漠郡王) 이실활(李失活)과 함께 유성(柳城)
주 001에 과거[의 예]에 의거해 영주도독부(營州都督府)를 설치해 줄 것을 청하자 황제가 이를 따랐다. 칙을 내려 태자첨사(太子詹事) 강사도(姜師度)를 사자(使者)로 임명해 [도독부를 설치하는] 공사[工作]를 감독하고 팔천여 명을 부리게 했다. 그 해, 대보가 들어와 알현하자 조칙을 내려 종외질녀(從外甥女) 신씨(辛氏)를 봉해 고안공주(固安公主)로 삼아 그에게 시집보내고 재물[物] 천오백 필(疋)을 하사하고 우영군장군(右領軍將軍) 이제(李濟)를 보내 지절사[持節]로 삼아 그들을 번국[蕃]으로 돌려보내게 했다.
색인어
- 이름
- 대보, 오소매락(粵蘇梅落), 대보, 대보, 이실활(李失活), 강사도(姜師度), 대보, 고안공주(固安公主), 이제(李濟)
- 지명
- 요락주(饒樂州), 거란, 유성(柳城), 영주도독부(營州都督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