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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동이전

모용황(慕容晃)이 고구려를 토벌함

강제 건원 원년(343)에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297~348)주 001
번역주 001)
慕容晃 : 모용외의 적장자로, 333년 모용외가 사망하자 모용부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아우 慕容仁이 반란을 꾀하여 요동을 장악하고 庶兄인 慕容翰은 段部로 망명하는 등 집권 초기의 모용황은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336년 모용인을 격파하여 다시 모용부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337년 동진과의 관계를 끊고 燕王을 자칭하며 前燕을 세웠다. 龍城(현재의 朝陽)으로 천도하였고, 고구려를 격파하고 夫餘를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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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군대를 이끌고 그(고구려)를 토벌하였다. [고구려왕] 쇠가 그와 더불어 싸워서 대패하고, 홀로 말을 타고 도주하였다. [모용]황은 이긴 기세를 몰아 [쇠를] 추격하여 환도에 이르러, 그 궁실을 불태우고, 남자 5만여 명주 002
번역주 002)
『진서』 권109, 載記9 및 『한원』 권30, 번이부30에 인용된 『十六國春秋』에는 “掠男女五萬餘口”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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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잡아서 돌아갔다.주 003
번역주 003)
모용황의 고구려 공략전을 축약한 내용에 해당한다. 『진서』 권109 모용황재기에 전쟁의 자세한 경과가 전해지며, 『자치통감』 권97에는 ‘南北道’의 지리조건과 前燕軍의 전략 등 『진서』에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 더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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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주 001)
    慕容晃 : 모용외의 적장자로, 333년 모용외가 사망하자 모용부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아우 慕容仁이 반란을 꾀하여 요동을 장악하고 庶兄인 慕容翰은 段部로 망명하는 등 집권 초기의 모용황은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336년 모용인을 격파하여 다시 모용부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337년 동진과의 관계를 끊고 燕王을 자칭하며 前燕을 세웠다. 龍城(현재의 朝陽)으로 천도하였고, 고구려를 격파하고 夫餘를 공격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진서』 권109, 載記9 및 『한원』 권30, 번이부30에 인용된 『十六國春秋』에는 “掠男女五萬餘口”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모용황의 고구려 공략전을 축약한 내용에 해당한다. 『진서』 권109 모용황재기에 전쟁의 자세한 경과가 전해지며, 『자치통감』 권97에는 ‘南北道’의 지리조건과 前燕軍의 전략 등 『진서』에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 더해져 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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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황(慕容晃)이 고구려를 토벌함 자료번호 : jd.k_0008_0054_001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