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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육자(육가)가 수레를 내달리니, 참람되이 견주었던 명호가 이에 바뀌었다.

육자(육가)가 수레를 내달리니, 참람되이 견주었던 명호가 이에 바뀌었다.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후 때 유사가 [모든] 남월의 관시에서 철기[의 교역]를 금지했다. 조타는 이에 스스로를 높여 남무제라 하고 군사를 일으켜 장사를 공격했다. [월은] 동서로 만 여리가 되었다. 이내 황옥과 좌독[을 갖춘 수레]를 타고 칭제하며 중국과 같이 따랐다. 문제(재위: 기원전 180~기원전 157) 초에, [조]타의 선친 무덤이 진정에 있었기 때문에 수읍을 설치하고, 그의 종형제를 불러 높은 관직을 높이고 후하게 하사하며 그들을 총애하였다. 그리고 육가를 불러 태중대부로 삼고 [조타에게] 사신으로 가게 하여 [서신을] 내리니, [조]타가 이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 참고
『漢書』 卷95 兩粵 高后時 有司請禁粵關巿鐵器 佗曰 高皇帝立我 通使物 今高后聽讒臣 別異蠻夷 鬲絕器物 此必長沙王計 欲倚中國 擊滅南海并王之 自為功也 於是佗乃自尊號為南武帝 發兵攻長沙邊 敗數縣焉 高后遣將軍隆慮侯竈擊之 會暑溼 士卒大疫 兵不能隃領 歲餘 高后崩 卽罷兵 佗因此以兵威財物賂遺閩粵 西甌駱伇屬焉 東西萬餘里 乃乘黃屋左纛 稱制 與中國侔 文帝元年 初鎮撫天下 使告諸侯四夷從代來卽位意 諭盛德焉 乃為佗親冢在真定置守邑 歲時奉祀 召其從昆弟 尊官厚賜寵之 詔丞相平舉可使粵者 平言陸賈先帝時使粵 上召賈為太中大夫 謁者一人為副使 賜佗書曰皇帝謹問南粵王 甚苦心勞意 朕 高皇帝側室之子 棄外奉北藩于代 道里遼遠 壅蔽樸愚 未嘗致書 高皇帝棄羣臣 孝惠皇帝卽世 高后(白)[自]臨事 不幸有疾 日進不衰 以故誖暴乎治 諸呂為變故亂法 不能獨制 乃取它姓子為孝惠皇帝嗣 賴宗廟之靈 功臣之力 誅之已畢 朕以王侯吏不釋之故 不得不立 今卽位 乃者聞王遺將軍隆慮侯書 求親昆弟 請罷長沙兩將軍 朕以王書罷將軍博陽侯 親昆弟在真定者 已遣人存問 脩治先人冢 前日聞王發兵於邊 為寇災不止 當其時長沙苦之 南郡尤甚 雖王之國 庸獨利乎 必多殺士卒 傷良將吏 寡人之妻 孤人之子 獨人父母 得一亡十 朕不忍為也 朕欲定地犬牙相入者 以問吏 吏曰 高皇帝所以介長沙土也 朕不得擅變焉 吏曰 得王之地不足以爲大 得王之財不足以爲富 服領以南 王自治之 雖然 王之號爲帝 兩帝並立 亡一乘之使以通其道 是爭也 爭而不讓 仁者不爲也 願與王分棄前患 終今以來 通使如故 故使賈馳諭告王朕意 王亦受之 毋爲寇災矣 上褚五十衣 中褚三十衣 下褚二十衣 遺王 願王聽樂娛憂 存問鄰國 陸賈至 南粵王恐 乃頓首謝 願奉明詔 長為藩臣 奉貢職주 001
각주 001)
『한서』 및 『후한서』의 「양월전」 부분을 참고했을 때 양월 뒷부분은 누락되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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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한서』 및 『후한서』의 「양월전」 부분을 참고했을 때 양월 뒷부분은 누락되었다고 생각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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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육가)가 수레를 내달리니, 참람되이 견주었던 명호가 이에 바뀌었다. 자료번호 : hw.k_0002_013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