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칠성문
七星門
입지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위치해 있다.
유적개관
6세기 중엽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 처음 세워졌는데, 칠성문이라는 명칭은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문루는 1711년(숙종 37)과 1764년(영조 40)에 중건되었다. 칠성문은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겹쳐 쌓은 사이 틈에 성벽과 직각방향으로 쌓아 마는 것으로 암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성문의 석축을 성벽에 직각으로 쌓아 자연스럽게 옹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축조하였다. 암문은 보통 문루를 두지 않는데, 칠성문은 문루를 두어 암문과는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6
해설
6세기 중엽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 처음 세워졌는데, 칠성문이라는 명칭은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성문의 위치는 유지되었지만, 문루(門樓)는 1711년(숙종 37)과 1764년(영조 40)에 중건된 기록이 있다. 칠성문에서 문길이 있는 아래 부분은 계속해서 보수되었지만, 대체로 고구려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문은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겹쳐 쌓은 사이 틈에 성벽과 직각방향으로 쌓아 만든 것으로 암문(暗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성문의 석축을 성벽에 직각으로 쌓아 자연스럽게 옹성(甕城)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축조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일반 암문과 차이가 있는데, 암문은 성문이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문루를 두지 않는데, 칠성문은 문루를 두어 암문과는 차이가 있다.
칠성문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대체적으로 칠성문의 문루 의장은 일반적인 문루의 격식에 비해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반면에 하부의 석축은 쉽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방어에 유리한 독특한 구성을 갖는다.
칠성문은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겹쳐 쌓은 사이 틈에 성벽과 직각방향으로 쌓아 만든 것으로 암문(暗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성문의 석축을 성벽에 직각으로 쌓아 자연스럽게 옹성(甕城)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축조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일반 암문과 차이가 있는데, 암문은 성문이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문루를 두지 않는데, 칠성문은 문루를 두어 암문과는 차이가 있다.
칠성문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대체적으로 칠성문의 문루 의장은 일반적인 문루의 격식에 비해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반면에 하부의 석축은 쉽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방어에 유리한 독특한 구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