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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송두리유적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구석기/원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157번지
  • 시대
    고구려
  • 유형
    생활
입지
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낮은 구릉지에 있는 대모산성 북쪽에 인접해 있다.
유적개관
한성백제기의 주거지와 함께 고구려 계통의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출토유물
* 토기
참고문헌
발굴보고서
해설
2002년 진천-진천IC 도로 확장공사 구간에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2003년 중원문화재연구원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각각 구제 발굴을 실시하였다.
선사시대 문화층에서는 많은 수의 생활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유물에 대한 조사결과 대체로 구석기시대로 판명되고 있다. 송두리유적은 미호천과 백곡천 두 하천 사이의 얕은 야산과 구릉에 위치하여 있는데, 주변 경작환경이 용이한 까닭에 이른 시기부터 취락지가 형성된 결과로 사료된다.
역사시대 문화층에서는 원삼국시대 이후의 시대별 주거지 유적이 다량 조사되었는데, 마한에서 백제에 이르는 시기의 것들이 주를 차지하였다. 또 원삼국시대 토광묘(土壙墓) 2기, 신라시대 토곽묘 3기, 고려시대 고분 2기, 조선시대 민묘(民墓) 8기 등이 발굴되었다. 이들 고분을 별도로 ‘진천송두리고분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거지와 고분군 주변에서는 많은 수의 토기 편들이 발견되었는데, 연구자들에 의해서 1-3세기의 와질토기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종래에 중부지방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유형이어서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송두리 유적의 토기들은 공간적으로 원삼국시대 영남지역과 중부지방 원삼국 문화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아울러, 청동기시대 무문(無紋)토기와 삼국시대 토기 사이에 잃어버린 고리처럼 남아있던 원삼국시대 토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간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는 마한에서 초기 한성백제까지 이어지는 시간에서 유물의 공백을 매워주는 중요한 단서이자, 진천지역 집단이 한강유역의 한성백제 세력과 이른 시기부터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 원삼국시대의 철(鐵)의 생산과 유통은 국가의 성장과 교류의 표징(表徵)이 되고 있는데, 인근 덕산면 석장리에는 고대 철 생산유적이 있어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송두리유적 토기들이, 인접한 산수리(山水里)와 삼용리(三龍里) 가마터(窯址)에서 발견되는 백제 토기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인 점도 주목된다. 두 가마터는 2-3세기 것으로 송두리유적과 시기는 같지만 유형이 상이하여 동시기 인접거리에 이질적인 두 집단이 존재를 반증하고 있다.
송두리유적에서는 고구려계통 토기 편들도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기록에는 고구려가 충주지역 중원경까지 진출한 것이 확인되므로, 아마도 송두리유적의 고구려계 토기는 고구려 주둔군의 흔적이거나, 나아가 이주한 고구려 주민의 것들로 보아도 무방하다.
송두리유적은 남쪽으로 접해 있는 대모산성(할미성)과 함께 5세기 후반 삼국의 영역확장 관계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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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7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