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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우산992호묘

禹山0992號墓/JYM0992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우산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太王鎭 禹山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우산 아래 완만한 구릉에 독립하여 위치한다.
유적개관
과거 온화보중대총, 서강북대총이라는 명칭이 있었던 고분으로, 계단적석총이다. 동변 37.5m, 남변 38.5m, 서변 36.5m, 북변 36.1m이며, 중심의 수직 높이는 약 6.5m이다. 현재 확인 가능한 계단은 7단이며, 묘실은 훼손되었지만 석재로 네 벽을 쌓고 강돌로 바닥을 깔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쪽에 길이 33.2m, 폭 6~8, 높이 1m인 제대가 있으며, 서측에도 동쪽 길이 25.5m, 서쪽 36.5m, 폭 4.5~8.4m에 달하는 제대가 있다.
유물개관
와당(권운문 24-戊戌연호, 연화문1), 금기(보요), 도금기(보요, 포식, 요엽 등), 동기(정), 철기(찰갑편 , 교구), 토기편, 석기 등
참고문헌
「集安高句麗王陵」, 2004
해설
집안시에 위치한 고구려의 대형 계단적석총이다. 그 규모가 장대하여 일제시기 이래 ‘온화보중대총(溫和堡中大冢)’과 ‘서강북대총(西崗北大冢)’으로 불리다가, 1966년 JYM0992호로 편호되었다. 통구고분군 가운데 우산하고분군 동북쪽에 위치한다. 고분이 있는 우산 남쪽의 산기슭으로 주변지세는 탁 트인 편이며, 북쪽 500m에 집안-통화 철로가 지나간다. 동남 1km에 태왕릉이, 서남 900m에 우산하 2100호분이 있고, 남쪽으로 압록강이 바라보인다. 고분은 방형의 계단식적석총으로서 각 변의 길이는 동변 37.5m, 남변 38.5m, 서변 36.5m, 북변 36.1m이다. 잔존 높이는 6.5m이다. 1930년대 철로 건설 과정에서 파괴된 서면을 제외하면 동·남·북 3면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산기슭에 위치했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각 변의 고도차는 거의 없고, 지면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축조했기 때문에 제1층 각 변의 단수도 3단으로 동일하다. 계단석은 대부분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하단의 계단석은 길이 150cm, 너비 50~60cm로서 비교적 크며, 위쪽 계단석은 길이 40cm, 너비 30cm로 조금 작다. 이러한 돌로 외곽의 계단을 축조한 다음 그 내부를 강돌이나 깬 산돌로 평평하게 채운 다음, 그 위에 다시 계단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총 7층까지 축조했다. 무덤 정상부는 방형의 평대를 이루며, 중앙에 매장주체부가 있었지만 도굴로 파괴된 상태이다.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뚫려 있는 함몰갱은 길이 17m, 너비 9m, 깊이 2.3m로 가장 깊은 곳은 제4층 계단보다 낮다. 이 구덩이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고, 그 주변에 기와편과 와당도 많이 흩어져 있다. 함몰갱의 양상으로 보아 매장주체부는 바닥에 천석을 두껍게 깔고, 천석이나 괴석으로 네 벽을 축조한 너비 400~500cm, 깊이 100cm 전후의 석곽으로서 천장석을 덮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3층 계단 아래쪽에는 십자형의 석장(石墻)을 축조하여 석재의 외장력을 감소시키고 석곽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졌다. 동측 17m 거리에 제대(3,320×600~800×100)라 불리는 석축시설이 있고, 서측 16m에도 이와 동일한 시설(2,550~650×450~840×25)이 있는데, 건물지나 배장묘로 추정하기도 한다. 함몰갱에서 금동제 칼집과 보요 장식품 28건이 출토되었고, 순금제 보요장식품 3건, 목관용 동제 꺾쇠, 걸쇠, 못 36건, 철제 마갑편,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2만 여건의 기와편과 더불어 25건의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태세무술년조와고기(泰歲戊戌年造瓦故記)’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와당이 출토되었다. 와당의 무술년은 338년으로 추정되는데, 이로 보아 이 고분이 4세기 전반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와당을 근거로 고분의 주인공을 371년에 사망한 고국원왕으로 보기도 한다. 331년에 즉위한 고국원왕의 수릉(壽陵)이라는 것이다. 수릉이란 무덤을 대규모로 조영하고 많은 부장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권력자가 생전에 스스로 만든 무덤을 가리키는데, 고구려에서 수릉제가 시행되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고국원왕릉으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한편, 규모가 서대총이나 천추총 등에 비해 작다는 점에서 왕릉으로 단정하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 변 길이 35m 이상의 초대형 계단적석총이므로 왕릉급 무덤으로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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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992호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