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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동이전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함

[모용]수가 죽고 아들 [모용]보(재위: 396~398)주 001
번역주 001)
慕容寶 : 모용수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396년 부왕이 진중에서 병사하자 즉위하였다. 慕容隆과 慕容農의 보좌를 받아 재기를 노렸으나 탁발부 북위의 성장세를 막지 못하였다. 慕容麟의 모반에 위협을 느껴 中山을 버리고 龍城으로 천도하였다가 蘭汗에게 살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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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즉위하였다. [모용보는] 고구려왕 안(광개토왕, 재위: 391~412)주 002
번역주 002)
安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광개토왕 즉위년에서는 휘를 談德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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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평주목으로 삼고, 요동·대방 2국왕에 책봉하였다. [이에] 안이 처음으로 장사·사마·참군의 관직을 설치하였다.주 003
번역주 003)
長史·司馬·參軍 등의 관직은 본래 막부를 연 장군이 설치하던 속료들이었는데, 4세기 이후 중국과 주변국의 책봉·조공 관계가 장군직을 매개로 전개되면서 책봉을 받은 주변국 국왕도 막부를 개설하고 그 속료를 설치하여 주로 외교사절에 활용하였다(坂元義種,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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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고구려는] 요동군을 빼앗아 차지하였다.

  • 번역주 001)
    慕容寶 : 모용수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396년 부왕이 진중에서 병사하자 즉위하였다. 慕容隆과 慕容農의 보좌를 받아 재기를 노렸으나 탁발부 북위의 성장세를 막지 못하였다. 慕容麟의 모반에 위협을 느껴 中山을 버리고 龍城으로 천도하였다가 蘭汗에게 살해당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安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광개토왕 즉위년에서는 휘를 談德이라고 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長史·司馬·參軍 등의 관직은 본래 막부를 연 장군이 설치하던 속료들이었는데, 4세기 이후 중국과 주변국의 책봉·조공 관계가 장군직을 매개로 전개되면서 책봉을 받은 주변국 국왕도 막부를 개설하고 그 속료를 설치하여 주로 외교사절에 활용하였다(坂元義種, 1978).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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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함 자료번호 : jd.k_0008_0054_001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