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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삼론학

5. 삼론학

성실학이 크게 성행하고 있던 6세기 후반에 『성실론』의 대승불교 이해를 비판하면서 대승의 중관사상을 올바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파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들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중관학파의 논서의 내용에 기초하여 유(有)와 공(空)을 각기 별개로 구분하는 성실학자들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성실학자들이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각기 열반의 세계(의 진리)와 세속의 세계(의 진리)로 구분하여 후자를 버리고 전자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것에 대하여 삼론학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불교사전위키백과자들은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불교사전위키백과는 단지 설명하는 방식에 불과하며 참된 세계의 모습은 양자를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중도(中道)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또한 어떠한 주장이나 이론에 집착하는 것은 참된 중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주(無住)와 무(소)득(無(所)得)의 입장을 강조하였다.
삼론학은 5세기말 고구려 출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활동한 승랑(僧朗)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문전자대장경한국사DB위키백과에 의해 처음 제시된 이후 승전(僧詮)한문전자대장경, 법랑(法朗, 507~581)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 길장(吉藏, 549~623)위키백과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으로 계승되면서 점차 체계화되어 갔다. 승랑은 성실학의 공(空)사상이 반야사상의 본래 입장과 다름을 지적하면서 중관사상을 홍포하고자 노력하였고, 법랑은 진(陳) 황실의 존숭을 받으면서 수도의 흥황사(興皇寺)에서 삼론학을 강의하였다. 법랑의 제자인 길장은 본격적으로 삼론사상의 입장을 천명하는 많은 저술을 남겨 삼론종의 이론체계를 완성하였다.
삼론학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크게 성행하였다. 승랑의 출신지인 고구려 불교계에서는 삼론학 전공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수나라 초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고구려의 인(印) 법사는 촉(蜀) 지방과 장안에서 삼론학을 강의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구려 출신의 실(實) 법사는 강남지방에서 삼론학을 강의하였다. 고구려 국내에서도 삼론학이 발전하였음은 일본에 건너간 고구려의 승려들이 대부분 삼론학을 공부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다. 595년에 일본에 간 혜자(慧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한국사DB는 삼론학의 대가로서 성실학에도 밝았으며, 620년대에 일본에 건너간 혜관(慧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한국사DB과 도등(道登)불교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사DB도 모두 삼론학의 대가였다. 특히 일본의 제2대 승정(僧正)이 된 혜관은 일본 삼론종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백제에서 삼론학이 발달하였음은 6세기말 백제에서 삼론학 개론서인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가 편찬된 것을 통해 확인된다. 이 책의 저자인 혜균(慧均)은 법랑의 제자로서 법랑이 죽고 진나라가 멸망하자 백제에 귀국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중엽 법화경 독송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혜현(惠顯)도 삼론학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본에 건너가 활동한 혜총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사DB과 관륵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한국사DB고전적종합DB 등도 삼론학의 학자로 유명하였다. 6세기말 이후 백제에서는 삼론학이 불교계의 주류적 흐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 불교계에서 삼론학자로 명성을 날린 인물들은 확인되지 않지만 통일신라 초기에 활동한 원효와 의상의 사상에 삼론학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삼론학에 대한 이해가 일정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고구려와 백제 출신의 승려들이 대부분 삼론학자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들의 영향하에 삼론학이 불교의 기본적 이해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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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론학 자료번호 : edeah.d_0002_0020_004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