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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열반학과 성실학

4. 열반학과 성실학

불성사상이 중시되면서 불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열반경』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 되었다.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이자 가장 완전한 가르침으로 여겨진 『열반경』의 내용을 연구함으로써 불교의 핵심적 사상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특히 『열반경』에는 불성을 비롯하여 부처의 지혜와 중생에 대한 교화 등 부처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열반경』에 대한 연구는 곧 불교의 본질에 대한 연구로 생각되었다. 『열반경』은 6세기 중엽까지 최고의 경전으로 인정되어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었는데, 양(梁)나라 때에는 그 성과를 모든 『열반경집해』(71권)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주석서들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열반경』과 함께 『성실론』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위키백과불교사전불교사전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부파불교위키백과가 주장한 법유(法有)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空)의 사상을 선양한 『성실론』은 구마라집위키백과한문전자대장경불교사전의 만년에 번역된 이후 그의 문하를 중심으로 대승불교의 입문서로서 널리 읽혀졌다. 구마라집의 제자 중 승도(僧導)한문전자대장경와 승숭(僧嵩)은 각기 남중국과 북중국에서 『성실론』을 강의하였는데, 구마라집 이후 대승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성실론』 연구는 불교학자의 기본으로 정착되어 갔다. 6세기말까지 『성실론』에 대한 연구는 중국 전지역에서 활성화되었고, 5세기말 남조의 제(齊)나라에서는 황실의 후원을 받아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약성실론(略成實論)』이 편찬되기도 하였다. 한편 『성실론』은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5세기 이후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던 아비다르마위키백과불교사전 교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논서로서도 중시되었다. 이 책에서는 부파불교의 이론, 즉 아비다르마 교학을 자세하게 소개한 이후 그 문제점을 지적하여 논파하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와 아비다르마 교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 특히 대승의 입장에서 소승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다. 『성실론』의 이러한 특징은 이 책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승불교만이 아니라 아비다르마 교학에 대하여도 충분한 관심을 갖도록 하였는데, 실제로 『성실론』 연구자들은 아비다르마 교학에서 열반사상에 이르는 다양한 교학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성실론』 학자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양나라 때의 지장(智藏, 458~522)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 승민(僧旻, 467~527)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 법운(法雲, 467~529)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 등은 각각 『열반경』과 『승만경』 『법화경』에 대한 연구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동시에 모두 아비다르마 교학에 대하여도 높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6세기 후반 이후 중국 남조의 불교학에 영향받고 있던 백제와 신라에서도 열반학과 성실학이 크게 발달하였다. 백제 성왕은 양나라에서 『열반경』의 주석서를 구하였고, 성실학도 전래되어 활발히 연구되었다. 6세기말 진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원광(圓光, 550?~640?)불교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한국사DB한국사DB한문전자대장경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성실학 연구자로서 이름을 날렸고, 귀국 후 성실학에 기초하여 신라 불교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또한 여래장 사상에 입각한 점찰법(占察法)불교사전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실행하여 일반인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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