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포로 정성을 펴니, 무릉의 부가 이에 설치되었다.
종포주 001로 정성을 펴니, 무릉의 부가 이에 설치되었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오기가 도왕의 재상이 되어, 남쪽으로 만월주 002을 병합하여 마침내 동정주 003과 창오주 004를 가졌다. 진소왕은 백기로 하여금 초를 정벌하고 만이를 탈취하게 하고, 비로소 검중군을 설치하였다. 한이 흥하자 [검중군을] 고쳐서 무릉[군]으로 삼았다. 해마다 대인에게는 포 1필을, 소구에게는 [포] 2장주 005을 바치도록 하니, 이것을 종포라 한다. 비록 때때로 노략질하였으나, 우환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 참고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76 及吳起相悼王 南并蠻越 遂有洞庭蒼梧 秦昭王使白起伐楚 略取蠻夷 始置黔中郡 漢興 改爲武陵 歲令大人輸布一匹 小口二丈 是謂賨布 雖時為寇盜 而不足爲郡國患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