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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덕양리 조산 주거지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1991
  • 시대
    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조산마을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긴급발굴조사를 시행.
유적개관
수혈 주거지로 장축은 동서 방향이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임.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 현장 주변에는 상당량의 소토 및 탄화맥과 함께 주거지 내부가 파괴되면서 깨진 장란형토기 등 타날문토기가 널려 있었음. 바닥의 일부는 점토다짐을 하고 불에 구워 단단하며, 중앙부에는 2개의 둥근 화덕자리가 있음.
출토유물
* 장란형토기, 대형지석, 숯, 탄화맥 등
참고문헌
「소라 조산 주거지」
「돌산 세구지 유적」
해설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조산마을에 위치하는 원삼국시대의 주거지이다. 이 유적은 원래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는데, 남쪽의 해발 150m와 북쪽의 해발 179m 가량 되는 야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이 서로 만나는 해발 약 45m 가량의 낮은 고개마루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과 북쪽은 구릉으로 막힌 반면, 동쪽과 서쪽으로는 비교적 낮은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다.
1991년 겨울 지방도로 확·포장 공사 때 훼손된 채 확인되어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긴급히 조사되었다. 유적은 서쪽으로 경사를 이루면서 길게 파였기 때문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상당량의 불탄 흙[소토(燒土)] 및 불에 탄 보리[탄화맥(炭化麥)]와 함께 주거지 내부가 파괴되면서 깨어진 긴알모양토기[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 등 무늬가 찍힌 토기[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가 널려 있었다. 유물이 널려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아직 남아있는 벽(壁)의 일부와 화덕자리[노지(爐址)]를 비롯한 생활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주거지는 구덩식[수혈식(竪穴式)] 주거지로 동~서방향이 길고,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규모는 길이 4m, 너비 3.1m, 구덩[수혈(竪穴)]의 깊이 60cm 가량으로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바닥은 일부 점토를 깐 후 다짐을 하고 불에 구워 단단하다. 중앙부에는 각각 직경 50cm, 60cm 가량의 2개의 둥근 화덕자리를 설치하였는데 그 간격은 1.6m 정도이다. 동남쪽 모서리에 길이 70cm, 너비 60cm, 깊이 30cm 정도의 윗면이 편평한 돌이 위치하고 있는데, 주춧돌[초석(礎石)]로 사용된 것인지 그 기능은 알 수 없다.
유물은 긴알모양토기와 대형 숫돌[지석(砥石)] 2점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화덕자리에서 다량의 숯과 함께 불에 탄 보리가 수습되었다. 불에 탄 보리는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다. 토기류는 상당량 수습되었으나 완전한 형태는 없다.
주거지는 2개의 화덕자리가 있어 특이하지만, 벽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것과 장방형의 바닥을 진흙으로 다진 후에 불에 구운 것 등 대체로 이 시기의 일반적인 구덩식 주거지의 모습과 유사하다. 보리는 이 유적보다 앞선 시기의 여주 흔암리, 광주 신창동, 그리고 이 유적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김해 부원동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어 좋은 비교자료가 된다. 유물은 기원 후 3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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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리 조산 주거지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110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