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돈(安惇)이 소경(蘇駉)의 공장(供狀)과 임희(林希)의 말이 다른 것에 대한 사실 조사
이날 안돈이 소경으로 하여금 공장(供狀)으로 아뢰도록 하니, 임희가 구두로 아뢴 것과 자못 달랐다. 또 이야기하기를, “형서가 이르기를 ‘집정의 진퇴(進退)는 마땅히 군주된 자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아무리 재상이어도 간여할 수 없다.’라 하였다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안돈이 이어서 이야기하기를, “처음 소경에게 물을 때는 이와 같지 않았으나, 공장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이 이야기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상께서 “소경이 말한 바가 어찌 이와 같이 같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임희가 다시 스스로 변론을 하니 황제께서 “죄인을 심문하여 허실을 밝혀라.”라고 하였으므로, 이와 같은 조서가 내려진 것이다.
형서(邢恕) 역시 이날 연화전(延和殿)에서 (황제를) 마주하고는 임희(林希)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아뢰기를, “(임희가) 교묘하고 험악한 것을 천하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한참 만에 선제(先帝)께서 고려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맡은 일이 어렵다고 사양하니 이에 견책을 받았습니다. 그 후 왕규(王珪)주 001의 주장으로 문관(文館)에 다시 역임하였습니다. 선제(先帝)의 전후로 덕음(德音)이 누차에 내려졌으나 간사(姦邪)하다 하는 말이 무리들 사이에 퍼져서 선조(先朝)에서는 예부랑관(禮部郎官)에 그쳤습니다. 선인성렬황후(宣仁聖烈皇后)주 002께서 수렴청정하고 왕규는 이미 죽어 한진(韓縝)이 으뜸의 지위에 있으니, 임희와 그의 아우 임단(林旦)주 003은 한진에게 붙었습니다. (한진이) 임희를 발탁하여 좌사낭중기거사인으로 삼고, 임단을 공부고공낭관으로 삼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양도가 권력을 마음대로 하자 형제가 몰래 붙었으니, 1년 사이에 양도가 임도를 두 번천거하고 임희로는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으니, 모두 분명한 근거가 있어 그 성과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청신(李清臣)이 국가를 좌우하게 되자, 처음에는 보문각직학사 지성도부로 제수하였습니다. 장돈이 이미 도착하였으나 (임희는) 가지 않아 다시 머무르게 하고는 중서사인 한림학사로 삼아 궁궐에 앉아 중요한 직임을 맡았습니다. 임희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당여에 붙어 음험하고 삿된 신하이니 그 자취가 매우 분명하며, 선제[신종] 시기와 원우(元祐) 연간의 2, 3년 사이에만 조금 보이고 나머지는 이익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교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친당을 끌어 등용하고 안팎으로 인척을 조정에 도열하였으나 남길만한 이가 드물었습니다. 그 뜻은 이에 조정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으로 사사로운 계획을 삼았으니, 중외의 식견 있는 이들 중에 그가 진정으로 소인배임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부리는 대신을 잘 속이고 (대신을) 섬길 때에는 노비처럼 하니, 하고자 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세력이 점점 커져서 더 이상 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신은 끝내 국가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여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 스스로 결정하시어 바로 (임희를) 쫓아내십시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