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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왜적의 철수설에 대한 주본(奏本)을 개정하여 보낸다는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7. 回咨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4년 2월 11일(음)(만력 22년 2월 11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보내온 자문을 받으니, 「왜정(倭情)에 관한 일입니다. 운운」 했습니다.
 
[조선국왕] 자문을 받았습니다. 지난 만력 21년(1593) 9월 초10일에 당직은 천한 두 자식주 001
각주 001)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었던 선조(宣祖)의 두 왕자인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말한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1592년(선조 25) 7월 회령(會寧)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1593년(선조 26) 7월에 송환되었다. 김경태, 2012, 「임진전쟁 전반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동향-戰功의 위기와 講和交涉으로의 가능성-」, 『大東文化硏究』 77,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大東文化硏究院, 252 ․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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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적중으로부터 살아 돌아와 사은하는 사리 및 흉적이 영남 일대 군읍의 진보(鎭堡)에 점거하여 소굴을 짓고 노략하며 함락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 차위주 002
각주 002)
별도로 파견한 관원을 말한다. 『吏文輯覽』 卷2, 11(1976, 景文社,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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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호조참판 황진(黃璡)으로 하여금 주본을 가져가도록 하여 고급(告急)했습니다. 그 후 이어서 사후배신 윤근수(尹根壽)가 성야와 같이 속히 돌아와 아뢰었습니다.
[윤근수] 신이 경략 노야의 분부를 받았습니다.
[송응창] 그대 나라의 삼경(三京)주 003
각주 003)
한성(漢城), 개성(開城), 평양(平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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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八路)가 거의 모두 수복되었습니다. 일전에 비록 이미 차례대로 사은을 아뢰었으나 지금 두 왕자 또한 이미 돌아왔고 또 그대 나라에서 원래 유둔하도록 청한 병력 5,000명 외에 다시 11,000명을 더하여 방수에 대비하기를 청하니 주본을 갖추어 거듭 사은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윤근수] 보고합니다.
[조선국왕] 이를 받고 말씀하신 분부대로 곧장 주본을 갖추어 황진에게 속히 발송하여 주본을 바꾸어 진주(進奏)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이어서 (1593년) 윤11월 16일에 제도도순찰사 권율(權慄)이 대략 다음의 내용으로 치계했습니다.
[권율] 청도군수 차은로(車殷輅)의 치보 속 내용입니다.
[차은로] 군(郡)의 복병군 등이 전문(傳聞)했습니다.
[복병군] 내동(內東) 등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말 가운데 내용입니다.
[내동 통행인] 흉적이 본국(일본)에서 반신(叛臣)이 일어나 서생포(西生浦)·두모포(豆毛浦)·동래(東萊)·수영·부산포(釜山浦)·하룡당(下龍堂)·거제(巨濟)·김해(金海) 등지에 둔거하는 일본군 장수 및 거느리는 정예 군사가 밥을 찌고 군량을 싸서 초5일 배에 올라 본토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소자와 남녀도 배로 보낸다고 하여 시끄럽습니다.
[차은로] 치보합니다.
[권율] 과연 이 말과 같다면 천심이 화를 내린 일을 뉘우친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수차례 두루 조사하여 다시 치계하고자 합니다.
[조선국왕] 이를 받고 소방의 인민은 적이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기뻐 뛸 듯했고 다시 살게 된 것이라 여겨 곧바로 총병 척(금)주 004
각주 004)
척금(戚金, ?~1621)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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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정고(呈告)했습니다. 이어서 제3일에 다시 본관(권율)의 치계를 받았습니다.
[권율] 경상좌도수군절도사 이수일(李守一)이 보낸 군관 정웅남(鄭雄男)이 장기(長鬐)에서 속히 와서 아뢰었습니다.
[정웅남] 적이 떠났다는 말을 듣고 속히 서생포 근처에 가 보고 군관과 아병(牙兵)을 다수 파견하여 다시금 정탐하게 하니, 적도(賊徒)는 예전 그대로 진영에 가득 차 있고 또한 적선 5, 6척이 서생포에서 동래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국왕] 갖추어 온 장계를 받고서 마침내 이전의 철수설이 전적으로 거짓된 것임을 알았고 곧바로 총병 척(금)에게 정문을 보내 알렸으나 후자의 보고는 아직 전보(轉報)를 거치지 못했습니다. 지금 3, 4개월간 순서대로 올라 온 치보에 미쳐서는 적정(賊情)이 한결같이 긴급하다는 내용이 전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받고 가만히 생각건대 왜적이 철수한다는 소식이 과연 그러하다면 소방의 명운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데, 감히 실정을 숨기고 서둘러 갖추어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황진이 가져간 주본은 작년(1593) 9월에 이미 출발했으며, 또한 배신(윤근수)이 분부로 들은 바의 뜻으로 주본을 고쳐 그 사행에 보냈으니 이는 9월과 10월에 계속 언급된 왜정(倭情)이며, 권율이 보고한 왜적이 돌아가고 있다는 설은 곧 그 후 윤11월에 치계된 것입니다. 날과 달의 선후를 가히 살펴보건대, 주문을 고치는 당시에는 전혀 적이 돌아간다는 보고가 없었으니 어찌 반드시 지레짐작하여 미리 꺼릴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혼란한 보고가 아니라는 것이 진실로 자명합니다. 또한 9월 이후의 긴급한 왜정은 순서대로 실제에 근거하여 계속 갖추어 보고했고, 각 아문의 문서에 모두 기재되어 있으니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적이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배신이 다행으로 여겨 곧바로 총병 척(금)에게 정문으로 알렸으니, 진실로 털끝만큼이라도 장황하고 거짓된 뜻이 있었다면 응당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전의 보고가 막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보고에서 이르기를 이전 보고는 사실과 다르며 적도가 예전 그대로 가득 차 있다고 했으니, 어찌 다시 감히 사실이 아닌 말로 그릇되게 문득 보고하겠습니까? 적이 돌아간다는 말이 혹 간첩의 기만에서 나왔는지, 혹 정탐이 망령되이 들은 데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헛된 소식은 오직 실상으로 증명할 수 있을 뿐이지 족히 따질 것이 못 됩니다. 만약 저 적에게 철수의 뜻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지금 변경에 나누어 웅거하며 점차 경상우도 지역으로 다가오며 전라도로 향하는 문호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의 사체가 진실로 이와 같은데 어찌 감히 거짓을 꾸며 속이는 죄를 스스로 짓고자 하겠습니까? 소방이 참혹하게 병화를 입어 망하게 되었다가 근근이 아직까지 보존하며 3년 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천조의 장사(將士)가 역전(力戰)하여 굳게 지킨 공 덕분입니다. 비록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는다 해도 보답하기에 미흡하지만 지금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은덕만은 죽으나 사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적세가 장대하다는 말로 천조를 공갈하고 혼란한 보고를 꾸며 전수(戰守)의 공을 가린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실로 소방이 감히 차마하지 못할 일입니다. 적이 우리의 변경에 웅거하고 있어 오로지 천병의 진초(進勦)에 의지하고 있고 존망에 관계된 큰 기대가 어떠한데 감히 그 공적을 없애 제장(諸將)을 흩어지게 하겠습니까? 적이 만약 바다를 건넜다면 군사를 쓸 데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군사와 군량을 더 청하여 다시 무엇을 하겠습니까? 결단코 이러한 이치는 없습니다. 황진이 가져간 문서는 곧 황은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고 아울러 적정을 언급하는 것인데, 도중에 정체되어 제때에 도달할 수 없었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반년이 지났습니다. 소방의 어리석음이 심하여 수주(守株)주 005
각주 005)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줄임말이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구습과 전례만을 고집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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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만 있는 것은 사정상 부득이해서였지만 그래도 속마음을 다 아뢰지 못하였으니 근심만 간절합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귀사에서 이러한 사정을 양해하셔서 사실에 근거하여 전보해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마땅히 회자(回咨)하니 청컨대 검토하여 전보(轉報)하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요동도지휘사사에 보냅니다.
 
만력 22년 2월 11일.

  • 각주 001)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었던 선조(宣祖)의 두 왕자인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말한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1592년(선조 25) 7월 회령(會寧)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1593년(선조 26) 7월에 송환되었다. 김경태, 2012, 「임진전쟁 전반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동향-戰功의 위기와 講和交涉으로의 가능성-」, 『大東文化硏究』 77,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大東文化硏究院, 252 ․ 262쪽. 바로가기
  • 각주 002)
    별도로 파견한 관원을 말한다. 『吏文輯覽』 卷2, 11(1976, 景文社, 330쪽). 바로가기
  • 각주 003)
    한성(漢城), 개성(開城), 평양(平壤)을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척금(戚金, ?~1621)을 지칭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줄임말이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구습과 전례만을 고집한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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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철수설에 대한 주본(奏本)을 개정하여 보낸다는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자료번호 : sdmg.k_0002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