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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마사시게(橘眞重)의 추가 질의서 2

 
  • 발신자다치바나 마사시게(橘眞重)
  • 수신자동래부(東萊府)
  • 발송일1695년 6월 10일(음)
서로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또 동래에 서신을 보내었는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에 받은 예조의 회답 서계 가운데 의심할 만한 말뜻이 있었으나 두 번째 서계의 회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귀국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만 두 번째 답서만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받은 서계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묻지도 못했는데, 5월 11일에 재판(裁判)이 바다를 건너와 우리 군(君)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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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번주.

의 명령을 전하며 저에게 행장을 꾸려 속히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서계 가운데 의심스러운 부분을 청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5월 15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계를 올려 서울에 전달해 주기를 청했으며 6월 15일을 배에 올라 귀국하는 시기로 잡았습니다. 제가 듣기에 동래부에서 서울에 일을 보고할 때에 어떨 때는 2, 3일이 걸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4, 5일이 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개시(開示)하는 서계를 작성하여 보내는 데에는 그 사이의 날수가 14, 15일을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기약한 날짜가 30일이나 되는 것은, 귀국으로 하여금 의문을 제기한 서계를 자세하게 읽고 이 일의 연유를 잘 살펴 생각하여서 제가 배에 오르기 전에 서계를 고쳐서 보내주도록 하여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작은 뜻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월 23일에 저의 의견으로 답서의 문장을 더하고 줄여 초고본(稿本)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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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 원고.

을 적어서 서울에 전달해 주기를 청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훈도가 초고본을 가지고 와서 대인의 의견을 전하였는데, 그 말은 마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 일이 성취되지 못할 것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마침내 기약했던 일수(日數)를 줄여서 6월 10일에 승선(乘船)하기로 기약하였습니다. 훈도는 자꾸 초고본을 가지고 가서 대인(大人)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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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東萊府使).

과 재차 의논해 보라고 청하고, 대인은 또 훈도를 시켜 초고본을 전계(轉啓)하겠다고 와서 말하게 하는 것이, 간절하고 지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색하고 고집스럽게 부본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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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본(副本). 원본(原本)과 똑같이 만들어 참고로 보관하는 서류.

을 만들려 하지 않은 까닭은 귀국의 사정을 제가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의심스러운 점을 묻는 서계를 올린지 오늘까지 25일이 지나도록 귀국에서 개시를 내리지 않는 것은 개시할 만한 말이 없기 때문일 터인데, 개시할 만한 말이 없다는 것은 답서를 고쳐 작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반드시 있는 그대로 가지고 가게 하려는 것은 본주를 등한히 하고 소홀히 하는 것이며, 조정의 명령을 가볍게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귀국이 하는 일이 이미 이와 같으니 사신된 사람의 도리로 어찌 편안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곧바로 동래부로 달려가서 대인을 면접하고 바로잡아서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는 절의를 보여야 옳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우리 번주님께서 소환하시는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머금고 분노를 꾹 참고 명령에 따를 계획입니다. 대인께서는 가련하게 생각하시어 살펴 주십시오. 그런 까닭에 이미 받은 답서는 감히 가지고 갈 수 없으므로 훈도와 별차로 하여금 삼가 싸고 봉하여 왜관의 관수(舘守)에게 보내게 한 것이니, 이는 곧 훗날 사신(使者)을 파견하였을 때에 관수가 사신에게 주게 하여, 사신이 저의 뜻을 이어서 이 일의 성사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이 답서가 바다를 건너가서 일단 전계(轉啟)를 거치고 나면 훗날에 설사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다툼을 그치고 백년의 우호를 보존하는 길은 오직 서계를 왜관에 남겨두는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온 마음을 쏟아 이리저리 주선하는 일을 그만 두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돌아가면 반드시 귀국에서 답서를 보내지 않은 사실을 말해야 할 터인데, 귀국이 만약 훗날에라도 끝내 돌이켜 생각하려 않는다면 속임수를 쓴 죄를 제가 면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어떻게 하지 못할 뿐입니다. 이번의 이 사건은 귀국이 본주를 깊이 의심하고 있기에 제가 이런저런 말을 하는 까닭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합니다. 생각건대 훗날 사신을 파견하는 일이 있은 연후에 비로소 저의 정성스런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돌아갈 계획이 총망하여 뜻을 글로 다 쓰지 못하니 밝게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을해년(1695) 6월 10일.”
 

주 001
쓰시마 번주.
주 002
초벌 원고.
주 003
동래부사(東萊府使).
주 004
부본(副本). 원본(原本)과 똑같이 만들어 참고로 보관하는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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