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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일본사료집

남구만(南九萬)의 대일 강경론

9월 22일에 예조의 답서를 받고 10월 3일에 상선연(上船宴)주 001
각주 001)
사절이 치르는 의례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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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행하였다. 이때 저 나라(조선)에는 남정승(南政丞)주 002
각주 002)
남구만(南九萬, 1629~1711년): 숙종 때 소론의 거두로 자는 운로, 호는 약천, 본관은 의령이다. 효종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허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남인이 몰락하자 영의정까지 지냈다.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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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사직하고 물러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이는 80을 바라보는데, 이전의 서계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국왕이 사제주 003
각주 003)
남구만의 개인저택, 즉 사저(私邸)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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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가서 친히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로부터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었습니다만, 어찌 억세고 포악함에 위협당하여 한창 왕성한 때에 땅을 깎아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서계의 내용에 다만 마땅히 우리의 강계임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만일 일본의 노여움을 사서 변방에 변란의 기별이 생긴다면 이 늙은 신하의 머리를 베어 주시기를 빌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의로운 기개가 늠름하여 군신들이 삭탈하지 못하고 마침내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 각주 001)
    사절이 치르는 의례 중의 하나. 바로가기
  • 각주 002)
    남구만(南九萬, 1629~1711년): 숙종 때 소론의 거두로 자는 운로, 호는 약천, 본관은 의령이다. 효종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허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남인이 몰락하자 영의정까지 지냈다.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남구만의 개인저택, 즉 사저(私邸)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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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南九萬)의 대일 강경론 자료번호 : ud.k_0004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