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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에몬(忠左衛門)과 요시자에몬(吉左衛門)의 대화

 
一. 7월 23일(1696년) 미자와 요시자에몬(三澤吉左衛門)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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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주 아베 마사타케(阿部正武)의 家臣. 用人. (『竹嶋紀事』)

의 나가야(長屋)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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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처럼 길게 지어서 칸칸이 방을 만든 건물. 에도시대 상인들의 가옥. 다이묘(大名) 저택의 부지 안에도 나가야를 만들고 가신들을 살게 했다.

추자에몬(忠左衛門)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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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번의 에도가로(江戶家老) 오우라 추자에몬(大浦忠左衛門).

이 찾아가 前 번주님(御隱居樣)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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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번의 3대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

의 편지를 전하고 구두(口頭)로 이야기했다.
 “조선인(안용복 일행)이 지난 번에 이나바노쿠니(因幡國)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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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바노쿠니(因幡國)란 일찍이 일본의 고대(古代) 지방행정 구역이었던 國의 하나로 산인도(山陰道)에 위치한다. 별칭은 인슈(因州). 현재 돗토리현(鳥取県)의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에 건너온 일로, 통사(通詞)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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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관. 여기에서는 쓰시마번의 조선어 통역관을 가리킨다. 에도시대 일본에는 조선어 통역관 이외에도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오란다), 중국과 원활하게 교역하기 위해 당통사(唐通事)와 오란다 통사를 두었다.

를 [돗토리번에] 보내라고 오쿠보 가가노카미(大久保加賀守)님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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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

지로(次郞)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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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次郞)는 소 요시미치(宗義方)의 幼名으로, 요시미치는 요시자네(義眞)의 아들이다. 당시 쓰시마번을 다스리던 번주는 소 요시미치(宗義方)로, 1694년 11월 10살의 나이로 家督을 상속하여 1718년(34세)까지 번주로 재임하였다. 요시자네는 1692년 번주의 지위를 또 다른 아들 요시쓰구(義倫)에게 물려주었으나 요시쓰구가 1694년 사망하자 요시미치가 10세에 家督을 계승했다. 그러나 요시미치가 어리다는 점도 작용하여 요시자네가 사실상 번정(藩政)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쓰시마번 소케(宗家)의 역대 번주 일람】참조.

에게 지시한 바를 쓰시마(國元)에 전했더니 통사 2명, 무사 1명, 우필(佑筆)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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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右筆. 武家의 직명(職名) 중 하나로, 귀인(貴人)을 보좌하여 문서 기록하는 일을 관장했던 사람.

1명을 보낸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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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주 오쿠보로부터 돗토리번에 통사를 파견하라는 명을 받은 쓰시마번은 使者 鈴木權平, 祐筆 阿比留惣兵衛, 통사 諸岡助左衛門과 加勢藤五郞을 돗토리번에 보냈다. 이들 사자 일행은 1696년 7월 7일 쓰시마를 출발하여 돗토리번으로 향했다. (『竹嶋紀事』元祿 9년 7월 7일 참조).

그 문제와 관련하여 형부대보(刑部大輔)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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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자네(宗義真).

님의 의중을 구상서(口上書)로 작성하여 가져왔습니다. 문장 등은 지시에 따라 작성한 것이니 생각하시는 바를 거리낌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전하고, 구상서의 내용을 구두로 대략 말한 후 [요시자에몬에게] 건네주었다.
  추자에몬요시자에몬에게 말하기를, “양국의 통교는 예로부터 정해진 격식(樣子)이 있어서 쓰시마번만이 오로지 [조선과] 통교했고, 다른 번이 통교했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법(古法)을 깨고 쓰시마에 알리지도 않은 채 다른 번(藩)으로 건너와서 직접 항의한다고 하니 매우 부당한 처사입니다. 이번 항의를 어느 번에서든 받아준다면, 이후 막부(公儀)에 곤란한 사정을 모두 말씀드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형부대보에게 역(役)을 맡기신 보람도 없어집니다. 원컨대 법을 위반한 자이므로 어떤 사안이든 간에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하시고, 이나바(因幡)에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선책은 만약에 이나바에서 돌려보내기가 곤란하면 나가사키(長崎)로 보내서, 그곳에서 표류민을 송환하는 정례(定例)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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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이 일본 각지에 표착(漂着)할 경우, 임진왜란 이전에는 표착지에서 조선 표류민을 인수받았지만, 임란 후에는 조선 표류민을 일단 표착지에서 막부의 직할도시인 나가사키(長崎)로 호송하고 소정의 절차를 거친 후 쓰시마번이 인수하여 조선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이훈, 113쪽 참조).

에 따라 형부대보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리에도 맞고 차후를 고려하는 측면에서도 적절하리라 생각됩니다. 양국이 교류하는 문제는 윤번승(輪番之和尙) [주013]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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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서개찬사건(國書改竄事件; 柳川一件) 이후 에도막부는 쓰시마번의 대조선 통교에 대하여 견제장치를 마련하였다. 즉, 교토(京都)의 五山僧을 쓰시마번의 이테이안(以酊庵)에 교대로 파견하여 조선 관계 외교문서를 관리하도록 했다. 이는 외교문서의 개작을 방지하고 쓰시마번의 대조선 외교업무를 형식적이나마 감시하는 기능을 부여하는 조치였다. (『書き替えられた国書』, 160~181쪽 참조).

이 마치 감찰관처럼 [쓰시마번에] 파견되어 있어서, 양국 사이의 사안을 사사롭게 처리하는 것이 조금도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전부터 말씀드렸었는데, 다망하신 탓에 잠시 잊으셨는지요? 아무쪼록 이 점을 [로주 아베님께] 잘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라건대 이나바에서 곧장 돌려보내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가사키로 보내 형부대보에게 인도하시면 서찰을 첨부하여 그 나라(조선)로 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혹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법을 위반하고 건너온 자이니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하여 돌려보내면, 쇼군(上)님께 곤란한 문제를 상신하지 않으셔도 되고, 이후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에 형부대보님이 의향을 밝히셨는데, 통사가 그곳(돗토리번)에 도착하더라도 이곳에서 지시할 때까지는 대담(對談)을 삼가라는 지시를 내리셨다고 합니다. 구상서에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원로(遠路)의 일이기 때문에 여러 번 말씀드리다 보면 일이 지체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 생각을 빠짐없이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을 헤아려서 아무쪼록 [로주 아베님께]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요시자에몬이] 구상서를 보고는 “구상서의 내용에 관해서 일단은 異見이 없으니 분고노카미님(로주 아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 말한 구상서의 취지도 잘 알았으니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갔다.
 

주 001
로주 아베 마사타케(阿部正武)의 家臣. 用人. (『竹嶋紀事』)
주 002
행랑채처럼 길게 지어서 칸칸이 방을 만든 건물. 에도시대 상인들의 가옥. 다이묘(大名) 저택의 부지 안에도 나가야를 만들고 가신들을 살게 했다.
주 003
쓰시마번의 에도가로(江戶家老) 오우라 추자에몬(大浦忠左衛門).
주 004
쓰시마번의 3대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
주 005
이나바노쿠니(因幡國)란 일찍이 일본의 고대(古代) 지방행정 구역이었던 國의 하나로 산인도(山陰道)에 위치한다. 별칭은 인슈(因州). 현재 돗토리현(鳥取県)의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주 006
통역관. 여기에서는 쓰시마번의 조선어 통역관을 가리킨다. 에도시대 일본에는 조선어 통역관 이외에도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오란다), 중국과 원활하게 교역하기 위해 당통사(唐通事)와 오란다 통사를 두었다.
주 007
로주 오쿠보 다다토모(大久保忠朝).
주 008
지로(次郞)는 소 요시미치(宗義方)의 幼名으로, 요시미치는 요시자네(義眞)의 아들이다. 당시 쓰시마번을 다스리던 번주는 소 요시미치(宗義方)로, 1694년 11월 10살의 나이로 家督을 상속하여 1718년(34세)까지 번주로 재임하였다. 요시자네는 1692년 번주의 지위를 또 다른 아들 요시쓰구(義倫)에게 물려주었으나 요시쓰구가 1694년 사망하자 요시미치가 10세에 家督을 계승했다. 그러나 요시미치가 어리다는 점도 작용하여 요시자네가 사실상 번정(藩政)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쓰시마번 소케(宗家)의 역대 번주 일람】참조.
주 009
원문은 右筆. 武家의 직명(職名) 중 하나로, 귀인(貴人)을 보좌하여 문서 기록하는 일을 관장했던 사람.
주 010
로주 오쿠보로부터 돗토리번에 통사를 파견하라는 명을 받은 쓰시마번은 使者 鈴木權平, 祐筆 阿比留惣兵衛, 통사 諸岡助左衛門과 加勢藤五郞을 돗토리번에 보냈다. 이들 사자 일행은 1696년 7월 7일 쓰시마를 출발하여 돗토리번으로 향했다. (『竹嶋紀事』元祿 9년 7월 7일 참조).
주 011
소 요시자네(宗義真).
주 012
조선인이 일본 각지에 표착(漂着)할 경우, 임진왜란 이전에는 표착지에서 조선 표류민을 인수받았지만, 임란 후에는 조선 표류민을 일단 표착지에서 막부의 직할도시인 나가사키(長崎)로 호송하고 소정의 절차를 거친 후 쓰시마번이 인수하여 조선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이훈, 113쪽 참조).
주 013
국서개찬사건(國書改竄事件; 柳川一件) 이후 에도막부는 쓰시마번의 대조선 통교에 대하여 견제장치를 마련하였다. 즉, 교토(京都)의 五山僧을 쓰시마번의 이테이안(以酊庵)에 교대로 파견하여 조선 관계 외교문서를 관리하도록 했다. 이는 외교문서의 개작을 방지하고 쓰시마번의 대조선 외교업무를 형식적이나마 감시하는 기능을 부여하는 조치였다. (『書き替えられた国書』, 160~181쪽 참조).
 
이름
미자와 요시자에몬(三澤吉左衛門) , 추자에몬(忠左衛門) , 안용복 , 오쿠보 , 大久保 , 지로(次郞) , 형부대보(刑部大輔) , 추자에몬 , 요시자에몬 , 형부대보 , 형부대보 , 형부대보 , 형부대보
지명
이나바노쿠니(因幡國) , 쓰시마번 , 쓰시마 , 이나바(因幡) , 이나바 , 나가사키(長崎) , 이나바 ,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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