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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신매자가 당에서 보낸 국서를 백제인에게 탈취당함

 
  • 날짜(추고 16년) 608년 6월 15일(是日)
이 날에 장식한 배30척으로 객들을 강 하구에서 맞이하여 새로 지은 관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중신궁지련오마려(中臣宮地連烏摩呂;나카토미노미야도코로노무라지오마로)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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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撰姓氏錄』 左京 神別 中臣宮処連조에는 「大中臣同祖」라고 보인다. 20년 2월조에 堅塩媛의 改葬에 즈음하여 대신의 조사를 읽는 것이 보인다.

대하내직강수(大河內直糠手;오호시카우치노아타히아라테)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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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 倭國傳에 “倭王이 小德阿輩臺를 보내고 수백 인을 딸려 의장을 설치하고 鼓角을 울리며 맞이하였다.”고 하였다. ‘何輩’를 ‘河内’의 ‘河’로, ‘臺’를 ‘內’로 해석하기도 한다.

, 선사왕평(船史王平;후네노후비토오우헤이) [주003]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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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史는 『日本書紀』 흠명천황 14년 6월조에 보이고, ‘王平’은 여기에만 보인다.

을 장객(掌客) [주004]
번역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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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직책이다.

으로 삼았다. 이때 매자신이 “신(臣)이 귀국할 때에 당제 [주005]
번역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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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煬帝를 말한다.

가 국서를 신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백제국을 지날 때 백제인이 찾아내서 탈취하여 갔기 때문에 이를 올리지 못합니다.”라고 주상하였다. 이에 군신이 의논하여 “무릇 사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무를 다하여야 한다. 이번 사자는 어찌 태만하여 대국의 국서를 잃었는가.”라고 말하고, 매자를 즉시 유형(流刑)에 처하였다. 이때 천황은 “매자가 비록 국서를 잃는 죄를 범하였으나 경솔하게 단죄할 수는 없다. 저 대국의 객들이 이것을 들으면 또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즉시 사면되어 단죄되지 않았다.
 

주 001
『新撰姓氏錄』 左京 神別 中臣宮処連조에는 「大中臣同祖」라고 보인다. 20년 2월조에 堅塩媛의 改葬에 즈음하여 대신의 조사를 읽는 것이 보인다.
주 002
『隋書』 倭國傳에 “倭王이 小德阿輩臺를 보내고 수백 인을 딸려 의장을 설치하고 鼓角을 울리며 맞이하였다.”고 하였다. ‘何輩’를 ‘河内’의 ‘河’로, ‘臺’를 ‘內’로 해석하기도 한다.
주 003
船史는 『日本書紀』 흠명천황 14년 6월조에 보이고, ‘王平’은 여기에만 보인다.
주 004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직책이다.
주 005
隋煬帝를 말한다.
 
이름
중신궁지련오마려 , 대하내직강수 , 선사왕평 , 매자신 , 매자 , 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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