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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역사적 권원과 기타 역사적 고려사항

 
 

제4장 역사적 권원과 기타 역사적 고려사항

 

114. 중재합의 제2조는 중재재판소에게 적용가능한 국제법에 따라 그리고 “특히 역사적 권원에 기초하여” 영유권을 결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중재재판소는 따라서 예멘이 제시한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s)과 이의 복귀(reversion)와 관련한 주장과 에리트리아가 설시한 모합바카스(Mohabbakahs)의 에리트리아 식민지에 대한 오랜기간의 귀속 및 이탈리아에 의한 권원의 초기 확립에 관한 주장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멘 주장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당해 도서에 대한 “역사적 권원”이며 이는 사실 원칙에 관한 합의와 중재합의 양자 모두에서 매우 긴 문구로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동재판소는 제2조의 의도가 모든 관련 국제법중에서 그러한 요소에 특별한 주의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점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국제법의 원칙, 규칙 및 관행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영유권에 관한 결정과 관련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재판소는 당해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권원에 가장 높은 주의를 기울여왔다.
115. 에리트리아로서는 이디오피아의 부인할 수 없는 장구함(antiquity)에도 불구하고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에 근거한 영유권을 위한 주장을 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에리트리아는 부분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패배이후 영토처분의 결과로서 이디오피아에게 유효하게 이전된 당해 도서에 대한 권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 양차대전 사이의 시기 동안 이탈리아 측에 권원의 역사적 공고화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116. 예멘은 중세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시적 혹은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을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당해 도서는 Bilad el-Yemen의 일부를 구성했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고래의 권원은 오토만제국에 의한 몇몇 점령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오토만제국이 붕괴한 이후 현대 예멘으로 복귀되었다고 예멘은 주장한다.
117. 따라서 19세기 오토만의 두 번째 점령 이전에 존재하였던 “역사적” 혹은 “고래의” 권원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예멘뿐이며, 따라서 재판소가 이제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은 초기 권원에 대한 주장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역사적 배경의 경가인 것이다. 당해 장은 “역사적 권원”에 대한 법적 문제에 관한 당해 재판소의 궁극적 결론에 대한 서문으로서 당대 법률 문장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전체 역사가 이해되어야 하는 방식을 고려할 것이다. 게다가 당해 장은 “역사적 권원”의 법적 효과에 관한 결정에 중요한 예멘의 “복귀(reversion)” 이론을 다룰 것이다.
118. 역사적이며 고래의 권원에 대한 예멘의 주장은 몇가지 중요한 역사적 고려사항을 다루고 있다. 그 하나는 역사적 예멘의 정체성 및 그것이 분쟁 도서를 포함하고 있었는지와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국제법상 인정되고 있는 복귀(reversion)의 원칙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며, 세 번째는 고래의 권원의 복귀라는 개념 속에 계속성의 위치와 관련이 있다. 역사와 국제법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에리트리아의 주장은 다른 곳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당해 장은 홍해의 양안으로부터 온 어부들에 의해 당해 도서의 물이 공동으로 사용된 전통과 양안사이에 오토만의 행정관할권 분할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119. 예멘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고래의” 혹은 “역사적” 권원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맘의 시원적이며 불가양의 주권은 수세기 동안 존재했으며 예멘에 의해 남부 홍해 도서를 포함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역사적으로 Bilad el-Yemen으로 알려져 온 실체의 전체에 대해 미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주권은 예멘에 의하면 Sublime Porte가 예멘을 오토만 통치하에 속하는 주(vilayets)의 하나라고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멘의 오토만에 의한 병합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존속하였던 것으로 특징지워지고 있다.
120. 이와 관련하여 예멘이 제시한 주장은 19세기 말에서 오토만 제국의 붕괴까지인 관련 시기 동안 우세했던 역사적 및 법적 맥락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121. 오토만 제국과 예멘간의 관계의 특수성은 중요한 역사적 요소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예멘의 이맘에게 보다 높은 정도의 내적 자치를 부여했던 1911년에 체결된 Da'an 조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토만제국의 완전한 해체와 예멘의 주들을 포함한 모든 아라비아의 소유권 상실이 있을 때까지 오토만의 주권내에서 행동하는 영주로 남아있었다.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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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in particular, JOHN BALDRY, One Hundred Years of Yemeni History: 1849-1948, in L’ARABIE DU SUD VOL. II at 85 (J. CHELHOD ET AL., EDS.1984); ROGER JOINT DAGUENET, HISTOIRE DE LA MER ROUGE: DE LESSEPS A NOS JOURS, 113-116, 186-190, 240-241(1997).

오토만제국이 예멘에 대한 모든 주권적 권리의 포기를 인정했을 뿐만아니라 명시적으로 이전에 호데이다(Hodeidah)에 위치한 오토만의 wali의 관할하에 있던 도서에 대한 주권적 권원을 포기한 것은 로잔느조약 제16조에 의한 1923년 뿐이었다.
122. 자치체로서 이맘의 예멘의 영토적 범위는 예멘의 오토만 주의 범위와는 구별되어야만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1925년까지의 전시기 동안 예멘의 이맘은 Tihama와 홍해 연안에 대해 영유권이나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토만의 술탄과의 합의하에 이맘은 높은 산맥에 한정된 전적으로 육지로 둘러싸인 영토를 관장하였다. 오토만의 wali는 1917년까지 연안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했다. 그 이후, 연안은 처음 이탈리아인에 의해 지지되었다가 이후 영국 정부에 의해 지지된 지방 부족 통치자인 Idrisi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연안은 1926년이 되어서야 이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살펴보듯이, 이러한 사실은 예멘이 제시한 “복귀(reversion)” 주장 뿐만아니라 온전한 전통적 의미에서 시원적인 “역사적 권원”의 개념을 포함한 국제법의 다른 규칙의 적용에 있어서 부정적인 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23. 역사적 권원의 개념이 그러한 지리적 영역에 대해 정치사회적 권한을 미쳤던 지도자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 부족에게 초기억적으로 부여되는 시간동안 점유된 유목민의 토지에 대한 주권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당대의 세계에서 조차 존재할 수 있는 상황속에서 특별한 반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적 수역의 한계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되지 않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도서에 관해서는 다른 상황이 존재한다.
124. 현 사건에서 어느 당사국도 분쟁 도서가 역사적 수역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효과에 이르는 주장을 한 바 없다. 더구나 도서중 어느 것도 계절적이거나 임시적인 기초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계속적인 인간의 거주를 지탱하는 것을 허용할 자연적이며 물리적인 조건을 지니고 있지 않다. 연안의 육지와 쟁점이 되고 있는 도서간에 어떤 연관이 존재하던 간에 1923년 로잔느 조약 제16조에 따른 오토만 제국에 의한 당해 도서의 포기(제5장에서 보다 상세히 논의됨)가 논리적으로 또한 법적으로 여하한 기존의 권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125. 구두변론 절차 도중에 당시 발효중인 법에 의해 문제가 되는 지역에 대한 오토만의 주권이 합법적이었다는 점은 인정된 바 있다. 예멘은 로잔느조약의 당사국이 아니라는 사실과 예멘이 홍해에서 점령자(usurpers)로서의 영국과 이탈리아 양국민을 인지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법적 결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소송 절차에서 복귀(reversion)의 원칙이 국제법의 부분이라는 점이 당해 재판소를 만족할 만큼 확립되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재판소는 당해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해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권원의 연쇄가 필연적으로 중단되었으며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전 본안이 무엇이든 간에 그러한 주장은 좀처럼 원용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복귀”도 작동할 수 없었다. 수십년동안 지배적 역할은 수에즈 운하 뿐만아니라 양안에 위치한 홍해 남부의 식민지화를 통한 국제해상교통으로의 개방된 이후 홍해에서의 서구 해양세력에 의해 행사되었다. 그러한 헤게모니의 중요한 결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부과된 현상의 유지, 특히 1923년 로잔느 조약 제16조가 다루고 있는 도서에 대한 주권이 적어도 관련 서구세력이 당해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 비결정의 상태로 존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식민상태가 지배적이었던 한, 이디오피아나 예멘은 어떠한 분쟁 도서에 대한 주권을 확증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역사적 권원을 현시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 식민세력의 떠나고 나서야 현상의 변화 가능성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현상의 변화는 반드시 복귀(reversion)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126. 그러나 이는 역사적 고려사항에서 모든 법적 의미를 박탁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첫째 홍해 남부 해양자원이 어로를 위해 전통적으로 개방된 것과 관련하여 수세기 동안 지배적이었던 조건과 한쪽 편으로부터 다른쪽 편으로의 무제한적 교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홍해 남부의 역할은 양안 주민에 의한 도서의 공동 사용과 함께 모두 영유권에는 미치지 못하는 일종의 “국제지역권(servitude internationale)”으로서 역사적 공고화 절차를 통해 양 당사국에게 유리하게 발생한 특정의 “역사적 권리(historic rights)”를 창설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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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서는 YEHUDA Z. BLUM, Historic Rights, in 7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120 et seq.; and HISTORIC TITLES IN INTERNATIONAL LAW 126-129 (1965) 참조.

그러한 역사적 권리는 홍해 양안에 거주하는 주민을 위하여 수세기 동안 존재했던 공유물(res communis)이라는 특정 측면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법적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둘째 아프리카 연안으로부터 관리되었던 도서와 아라비아 연안으로부터 관리되었던 다른 도서간에 오토만 제국하에서 존재했던 관할권상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할 역사적 사실을 구성하고 있다.
127. 믿을만한 역사적 및 지리적 자료에 따르면, 고대와 현대의 보고 자료 모두 명백하게 대향하는 양안에 위치한 홍해 남부 부근에 살고 있던 주민이 항상 문화적으로 상호 관련이 되어 있었으며 동일한 유형의 사회경제적 행동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억적 시기이래 그들은 인간적이며 상업적 성격을 상호 교환하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현존하는 도서를 중간기지로 이용하면서 때로는 강력한 북풍으로부터의 피난처로 여용하면서 수역을 통해 자유롭게 어로활동을 하고 항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홍해의 아시아 혹은 아프리카 측의 지도자들로부터 어떠한 허가를 구할 필요 없이 또한 공공기관에 의해 행사된 제한과 규제 없이 수세기 동안 수행되었다.
128. 이러한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상황은 법적 관점에서 예멘의 어부는 물론 아프리카의 어부가 전체 수역을 통해 아무런 제한 없이 활동하여 홍해의 양안에 위치한 지역 시장에서 그들의 어획물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공유물로 특징될 수 있는 것의 존재에 이르게 하는 깊숙하게 뿌리박힌 문화적 행태를 반영하였다. 마찬가지로, 한쪽 해안에서 다른 쪽 해안으로 어로나 교역의 목적으로 항해하는 자들은 어떠한 정치적 혹은 행정적 성격의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고서 그러한 해양 구역에 산재해 있는 무인도서를 강력한 바람으로 피하기 위한 임시적 피난처로 사용하곤 했다.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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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CHARLES FORSTER, THE HISTORICAL GEOGRAPHY OF ARABIA, VOL. 1 at 113, VOL. II at 337 (1984) (first published in 1844); JOSEPH CHELHOD ET AL., L’ARABIE DU SUD - HISTOIRE ET CIVILISATION, VOL. I, at 63, 67-69, 252-255 (1984); ROGER JOINT DAGUENET, HISTOIRE DE LA MER ROUGE: DE MOISE A BONAPARTE 20-24, 86-87 (1995);와 YVES THORAVAL ET AL., LE YEMEN ET LA MER ROUGE 14-16, 17-20, 35-37, 43-47, 51-54 (1995) 참조.


129.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중재절차의 진행동안 증거로 제출된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목격되고 있다. 양 당사국이 제출한 증거의 포괄적 평가는 깊숙하게 뿌리박힌 행위의 공통된 유형 뿐만아니라 심지어 최근에도 지역 관습법에 따른 분쟁의 해결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적인 어부의 중재인(aq'il)에 대한 궁극적인 의뢰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상호 관계의 지속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해는 종합적으로 양 당사국이 제출한 홍해 양안 어부의 진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30. 앞서 서술한 사회경제적이며 문화적인 유형은 완전히 고전의 이슬람법 개념과도 조화를 이루는데, 이는 실제적으로 유렵열강사이에서 발전하여 19세기 서구 국제법의 기본적 특징이 된 “영유권(territorial sovereignty)”의 원칙을 무시하였다.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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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See in particular, A. SANHOURY, LE CALI FAT, 22, 37, 119, 163, 273, 320-321 (1926); MAJID KADOURI, Islamic Law, 6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227 et seq.; 와 AHMED S. EL KOSHERI, History of Islamic Law, 7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222 et seq 참조.


131. 그러나 직접 혹은 영주를 통해 19세기 전반기 동안 Bilad El-Yemen과 이후 에리트리아로 알려지게 된 것을 포함하여 홍해 부근의 전체에 가까운 국가를 지배한 오토만 제국이 1856년 크리미아 전쟁의 종료 후 이슬람 국제법체제의 공동체적 측면을 포기하여 Sublime Porte가 1875년 베를린회의 동안 완전히 통합된 당사자가 된 European concert of nations간을 규율하는 근대 규칙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국제법에 따르면, “영유권”의 법적 개념은 대부분의 국가를 위한 초석이 되었으며 홍해에서의 상황은 더 이상 새로운 현실의 법적 결과로부터 도피할 수 없었다.
132. 따라서, 양 당사국은 분쟁 도서가 처음에는 모두 오토만 제국의 영유권하에 속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만하다. 오토만의 당해 도서에 대한 주권의 행사속에서 Sublime Porte는 이집트의 Khedive에게 현재 에리트리아를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 연안의 오토만의 소유지(주)를 관리할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이러한 권한의 위임은 Dahlaks와 궁극적으로는 모합바카스(Mohabbakahs)를 포함한 아프리카 연안의 도서에 대한 관할권을 포함하고 있었다.
133. 홍해 양안에 대한 오토만 제국의 주권은 1880년까지는 다투어지지 않았으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동부나 아라비아 연안과 관련한 사건에서 유지되었다. 에리트리아는 1871년 5월 이탈리아가 Assab 남부를 넘어서 진행되는 지점에 위치한 아프리카 연안에서 1862년 이래 오토만 국기가 계양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나타내는 이집트의 Kedival 외무성이 발행한 1881년 12월 6일자 각서의 불어본을 제출했다. 이집트의 각서는 1880년까지 이집트 정부가 이탈리아의 주재가 본질적으로 사적이고 상업적인 성격이었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확인을 믿고 있었다는 점을 첨언하였다. 따라서, 아프리카 연안 전체와 인근 도서는 당시까지 Khedive의 관할하에 있었다. 동시에 모든 다른 도서들은 호데이다에 주재하고 Sublime Porte가 임명한 오토만 wali의 관할하에 있었고 계속되었다.
134. 따라서 1882년까지 오토만 제국을 대리하여 행동한 이집트의 Khedive 관할하에 있었던 홍해의 도서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의 해체까지 예멘의 오토만 주하에 존속했던 다른 홍해 도서간에는 명백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
135. 1930년 6월 10일자 영국 외무성의 각서는 1880년 Hertslet 각서에 명시적으로 의존하면서, 이집트의 Khedive는 아프리카 연안주변에서 “Mohabakah Islands, Harbiand Sayal”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른 범주와 관련하여, 영국의 각서는 “Great 하니쉬 그룹은 아라비아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술탄의 주권하에 있으며 그의 배타적 관할권 내에 있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해 각서의 제16문은 다음을 강조하였다:
Great 하니쉬, Suyal 하니쉬, 소 하니쉬, Jebal Zukur, Abu Ail는 아라비아 연안에 더 가까이 위치하면서 전쟁 이전에 터키의 관할과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136. 나아가 에리트리아는 당해 도서자체에 대해 행하여진 조사결과를 반영하고 있는 “홍해도서(The Red Sea Islands)”라는 제목의 1916년 10월 11일자 기록(note)을 포함한 이탈리아 식민성의 문서를 제출하였다. Part I을 “파르산(Farsan)”, Part II를 “Kameran”에 할당한 후, 당해 기록의 Part III은 “Gebel Zucur”로 언급되고 있는 것을 포함하는 “기타 도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표제는 “12개의 상당한 크기의 암석집단”은 물론 “두개의 크고 작은 하니쉬 도서”를 포함하였다. 당해 도서와 관련하여 “오토만 당국은 Gibut으로부터 예멘의 연안에 이르기까지 수입을 하는 선박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하여 Mulazim의 명령하에 그곳에서 40명의 작은 수비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자원의 부족으로 식수와 음식의 제공이 곤란하여, 오토만 당국은 그 수비대를 철수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군함에 의한 Midi의 폭격 이후, 오토만 당국은 “1909년 수비대를 복원하여 아프리카 원주민병(askaris)의 수를 100명으로 증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37. 하니쉬-주카르 도서에 대한 오토만의 주권을 확증하고 1916년 예멘의 주(vilayet)에 의해 계속되어 관리되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이러한 이탈리아의 식민경영문서는 에리트리아 식민지 총독에 의해 작성되어 1916년 10월 18일 이탈리아 외무성 장관에 전달된 이탈리아 식민성 장관 수신의 전신에 명시된 견해와 부합하고 있다. 1901년 7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홍해 도서”라는 제목의 외무성 기록은 당해 전신에 “Appendix II”로 첨부되어 있다. 1901년 기록은 도서를 세 개의 집단으로 구분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거리 때문에 에리트리아 식민지와 거의 혹은 대부분 관련이 없는 최북단의 도서, Massua를 마주하는 도서 및 BeilulAssab의 에리트리아 연안을 대향하고 있는 대부분의 남부 도서. 우리 지배하에 있는 Dahalac 도서를 제외한 홍해의 동쪽 연안에 위치한 거의 모든 도서와 중요도가 낮은 몇몇 기타 도서.
두 번째 집단과 관련하여 이탈리아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Dahalac 도서군도를 제외하고 - 이탈리아의 주권하에 있으며 홍해에서 가장 큰 도서를 포함하여 - Cotuma, Diebel TairCamaran은 군도의 이 두 번째 집단에서 주목할 만한 것인데, 모두 터키의 지배하에 있다.
당해 기록은 명백하게 “Cotuma”, “Gebel Sebair라 불리는 Djebel”과 “Camaran”을 “터키의” 것으로 특징지우고 있다.
세 번째 집단과 관련하여, 1901년 이탈리아 기록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하니쉬 혹은 Harnish(터키어)로 알려진 도서집단. 이는 Gebel Zucar도서와 작은 하니쉬도서 및 Abu-ail, Syul-하니쉬, HaycocMohabbach의 기타 소도서와 커다란 암석에 이르는 몇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38. 당대의 영국 문서 또한 모합바카스(Mohabbakahs)를 예외로 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당해 도서가 예멘의 주의 일부를 구성하였고, 그들의 장래 처분이 아라비아 연안에 대한 역사적 부속(historical attachment)에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139. 1917년 1월 15일자 “이탈리아와 터키 제국의 분할”이라는 제목의 외무성 각서는 제38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마침내, 이전에 터키 주권하에 있었던 홍해의 도서가 비록 순례의 교통로라는 관점에서 카마란(Kamaran) 도서에서 몇몇 특별한 체제가 필요할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아랍국가에게로 이전되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누구나 보고 있다.
140. Balfour경은 Curzon경 수신의 1919년 3월 13일자 서한에서 “카마란, Zukur하니쉬 도서 (Great 하니쉬, 소 하니쉬수율 하니쉬 그룹)” 뿐만 아니라 “Abu Ail, ZabayirJebel Teir”를 위한 해결은 영국 제국에 “그들을 병합시키는 것”이나 그들이 Sanna 혹은 Idrisi의 이맘이외의 본토상의 몇몇 독립적인 아랍 지배자에 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고 적시하였다.
141. Balfour경 수신의 1919년 5월 27일자 Curzon경의 서한은 아랍지배자로의 여하한 이전 문제를 본질적으로 당해 구역의 미래의 정치적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는데, “홍해 도서의 미래의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아라비아의 미래 지위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Curzon경은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영국 정부의 정책은 우선 체약당사국에 의한 당해 도서가 본토의 일부를 구성하고 따라서 관련 아라비아 지배자의 재산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지배자들이 영국 정부와 특별한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142. 추후 확대되듯이, 홍해 도서에 대한 행정권의 할당은 양안에 대한 주권적 권능으로서 혹은 아라비아 연안으로부터 만의 관할권 행사로서 행동하는 오토만 제국에 의하던 간에 고려되어야 하며 특정의 법적 가중치가 부여되어야 하는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43. 역사적 고려사항에 대한 이러한 고찰을 벗어나기 전에, 예멘이 당해 사건의 프레젠테이션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던 예멘의 고래의 혹은 역사적 권원의 문제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해 장에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역사적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점이 설명된 바 있다. 첫째, 중세 예멘이 한편으로는 인도와 동인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와 다른 지중해 항구들 간의 해상 교역의 흐름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연안 지역에 대해 거의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한 주로 산악으로 이루어진 실체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 둘째, 영유권의 개념은 중세 예멘과 같은 실체에는 전적으로 낯선 것이었다. 사실 근대 국제법에 있어서 영유권의 개념은 늦게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발생한 것으로 전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주장하였으며 인정되었다.
144. 그러나 고래의 권원에 대한 예멘의 주장 특히 로잔느조약 제16조의 효과와 고래의 권원의 계속성과 오토만 제국의 말기의 복귀(reversion)의 원칙을 수립하는 필요성에는 다른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으며 고래의 권원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동재판소의 최종적 견해는 제10장에서 표현되고 있다.
 

주 009
See, in particular, JOHN BALDRY, One Hundred Years of Yemeni History: 1849-1948, in L’ARABIE DU SUD VOL. II at 85 (J. CHELHOD ET AL., EDS.1984); ROGER JOINT DAGUENET, HISTOIRE DE LA MER ROUGE: DE LESSEPS A NOS JOURS, 113-116, 186-190, 240-241(1997).
주 010
이와 관련하여서는 YEHUDA Z. BLUM, Historic Rights, in 7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120 et seq.; and HISTORIC TITLES IN INTERNATIONAL LAW 126-129 (1965) 참조.
주 011
특히 CHARLES FORSTER, THE HISTORICAL GEOGRAPHY OF ARABIA, VOL. 1 at 113, VOL. II at 337 (1984) (first published in 1844); JOSEPH CHELHOD ET AL., L’ARABIE DU SUD - HISTOIRE ET CIVILISATION, VOL. I, at 63, 67-69, 252-255 (1984); ROGER JOINT DAGUENET, HISTOIRE DE LA MER ROUGE: DE MOISE A BONAPARTE 20-24, 86-87 (1995);와 YVES THORAVAL ET AL., LE YEMEN ET LA MER ROUGE 14-16, 17-20, 35-37, 43-47, 51-54 (1995) 참조.
주 012
특히 See in particular, A. SANHOURY, LE CALI FAT, 22, 37, 119, 163, 273, 320-321 (1926); MAJID KADOURI, Islamic Law, 6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227 et seq.; 와 AHMED S. EL KOSHERI, History of Islamic Law, 7 ENCYCLOP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222 et seq 참조.
 
지명
모합바카스(Mohabbakahs) , 호데이다(Hodeidah) , Tihama , Dahlaks , 모합바카스(Mohabbakahs) , Assab , Mohabakah Islands , Great 하니쉬 , Great 하니쉬 , Suyal 하니쉬 , 소 하니쉬 , Jebal Zukur , Abu Ail , Gebel Zucur , 하니쉬 , 하니쉬-주카르 , Massua , Beilul , Assab , Dahalac , Dahalac , Cotuma , Diebel Tair , Camaran , Cotuma , Gebel Sebair , Camaran , 하니쉬 , Harnish , Gebel Zucar , 하니쉬 , Abu-ail , Syul-하니쉬 , Haycoc , Mohabbach , 모합바카스(Mohabbakahs) , 카마란(Kamaran) , 카마란 , Zukur , 하니쉬 , Great 하니쉬 , 소 하니쉬 , 수율 하니쉬 , Abu Ail , Zabayir , Jebel Teir
사건
로잔느조약 , 1923년 로잔느 조약 , 로잔느조약 , 1923년 로잔느 조약 , 로잔느조약
법률용어
역사적 권원 , 영유권 , 고래의 권원(ancient titles) , 역사적 권원 , 영유권 , 역사적 권원 , 고래의 권원 , 영유권 , 고래의 권원 , 고래의” 권원 , 역사적 권원 , 역사적 권원 , 고래의 권원 , 고래의 권원 , 행정관할권 , “고래의” 혹은 “역사적” 권원 , 주권적 권원 , 영유권 , 배타적 관할권 , 역사적 권원 , 역사적 권원 , 점유 , 역사적 권원 , 영유권 , 국제지역권(servitude internationale) , 공유물(res communis) , 영유권(territorial sovereignty) , 영유권 , 영유권 , 배타적 관할권 , 역사적 권원 , 영유권 , 영유권 , 영유권 , 고래의 권원 , 고래의 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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