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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명문전

자료관에 소장된 명문전(銘文塼) 3점은 장무이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
①은 두 개로 깨어진 파편이나 완형으로 복원이 가능한 명문전이다. 승문 타날이 없는 면에 ‘朝鮮舍理院舊家旧蔵江口君贈大正十一年四月’이라고 묵서로 주기되어 있다. 거친 태토를 이용해 소성했고 회색을 띠며 경질이다. 명문의 전체가 명확하지 않으나 기존에 보고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장측면에는 예서체의 한자로 ‘大歳在戊漁陽張撫夷塼’라고 찍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주 001
각주 001)
谷井濟一,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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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은 좌우로 반전되어 찍혀 있다.주 002
각주 002)
이는 전을 만드는 공인이 문자가 반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문자의 방향이 무시되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정인성,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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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의 주위에는 한 줄의 경계선이 둘러져 있다. 단측면에는 삼등분한 각 부분에 이중의 능형문이 배치되어 있다. 명문과 문양이 새겨진 장·단측면의 반대쪽 면은 무문이다. 명문이 있는 장측면을 기준으로 단측면의 문양면을 오른쪽으로 두었을 때 상면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타날한 승문이 겹쳐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승문타날 위로 도구를 이용해 강한 긁기 흔적이 보이므로 타날한 이후에 긁기가 행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명문과 문양에 형틀에서 빼 낸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분해식 형틀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회반죽이 부착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②는 완형의 명문전으로 거친 태토를 이용해 소성했고 회색을 띠며 경질이다. 장측면에는 예서체의 한자로 ‘哀哉夫人庵背百姓子民憂慼, 夙夜不寧永側玄宮痛割人情’이라고 찍혀 있고 단측면에는 ‘張使君’이 찍혀 있다. 명문이 있는 장·단측면의 반대쪽 면은 무문이다. 무문의 장측면을 기준으로 무문인 단측면을 오른쪽으로 두었을 때 상면에는 횡방향으로 타날한 흔적이 확인된다. 무문의 장측면에는 전을 건조시킬 때 겹쳐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된다. ①과 마찬가지로 명문이 반전되어 있고 승문타날 이후에는 도구를 이용해 양쪽을 강하게 긁어낸 흔적이 확인된다. 이 전도 분해식 형틀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회반죽이 부착되어 있다.
③은 ①과 거의 흡사한 명문과 문양이 찍혀 있고 제작기법도 유사하다.주 003
각주 003)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깨어진 부분을 복원하면 완형인 전이다. 탁본과 실측도는 깨어진 하부를 싣지 않았다. 사진의 참조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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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약한 적색을 띤 회색이라는 점과, 장측면의 명문을 기준으로 이중 능형문이 반대쪽 단측면에 시문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상과 같은 명문과 문양의 배치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장무이묘 출토의 명문전은 문양이나 명문을 조합하는 각각의 분해식 형틀면이 지정된 장소에 정해져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제작자의 그때그때의 의도에 따라 조합되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각주 001)
    谷井濟一, 1914 바로가기
  • 각주 002)
    이는 전을 만드는 공인이 문자가 반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문자의 방향이 무시되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정인성, 2010). 바로가기
  • 각주 003)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깨어진 부분을 복원하면 완형인 전이다. 탁본과 실측도는 깨어진 하부를 싣지 않았다. 사진의 참조를 요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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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 자료번호 : ku.d_0003_0090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