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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이타 조사단의 고구려 유적 조사

1916년 즉 다이쇼[大正] 5년도에 제출된 복명서를 살피면 구로이타 가쓰미도 고구려 유적을 조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로이타는 1916년 8월 23일부터 사적조사(史蹟調査)를 목적으로 출장하여 약 20일간 황해도 은율군과 봉산군, 평안남도 대동군 용강군, 안주군 및 평안북도 의주군, 용천군, 정주군 등을 답사하였다. 당시 구로이타는 ‘조선사의 고고학적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조선 문화의 출발을 구하는 것’이 조사의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문제는 그 출발을 밝히기 위해 처음 조사를 마음먹은 것이 대동강변의 낙랑 유적이라는 것이다. 『조선사(朝鮮史)』를 편찬한 그가 식민사관의 정립을 위해 고고자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용강군 진지동 지운면 성우동에서 왜성(倭城)을 조사한 사실도 고적조사에 임하는 그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8월 25일경 구로이타는 진지동의 두륵산에 있는 사지를 조사하고 산을 내려오는 중에 양원리에서 고분군을 발견한다. 고분군 중에서 2~3기를 굴착 조사하여 검사를 해 보았더니 고분의 묘벽은 절석(切石)을 쌓아올려 만든 것임이 드러났다고 기록하지만 상세한 조사 내용은 없다. 사진 2장이 제시되었는데 봉토에 도굴된 흔적이 남았고 석실의 뚜껑돌이 붕락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26일에는 용강군 진지동 봉산면 옥조리(구 관산동)에도 고구려 고분을 발견했다. 고분은 현실 천장이 파괴되어 도굴된 흔적이 있으며, 연도는 오른쪽에 있고 남쪽으로 면하며 석회의 흔적이 뚜렷하다고 한다. 그는 부근의 고분도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 후 구로이타는 세키노 조사단이 고구려 석실과 석곽을 조사했던 황룡산성 남록을 지나 서문에 도착하여 점제비를 보고 다시 돌아와 황룡산 부근에서 도굴된 노출 석곽을 관찰하였다. 그날 온정리에서 숙박하고 27일에는 신녕면 유복리에서 석교산 아래와 대대면 매산리에서 고구려 고분군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대면 매산리 고구려 고분이라는 것은 1913년에 세키노 조사단이 이미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도면을 작성했던 고분인데(정인성, 2008), 그 주변 고분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28일에는 초축(初築)이 고구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황룡산성을 보고 은율군 서부면으로 이동하여 연도부에 판석이 덮힌 낙랑 전실묘 1기를 발굴한 정황이 확인되지만 더 이상 고구려 고분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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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이타 조사단의 고구려 유적 조사 자료번호 : ku.d_0003_003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