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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오가와 게이키치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는 1882년에 큐슈의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1907년에 내무성 종교국에서 근무했음이 확인되고 1914년 무렵에는 신사(神社) 재건축의 현장 감독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가 한반도의 고적조사사업에 참가하게 된 것은 1916년으로 세키노 다다시가 주도하여 낙랑고분 10기에 대한 발굴조사가 기획되는 과정에서였다. 당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촉탁이 되어 총독부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朝鮮總督府 古蹟調査委員會)’의 위원들이 실시하는 발굴조사를 보조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 후 ‘세키노조사단’의 중요 멤버가 되어 각종 고적조사사업에 참여하게 되는데 오바 쓰네키치와 노모리 겐과 함께 평양 주변의 고구려와 낙랑 유적에 대한 조사사업에 주로 참여하였다.
1917년에는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의 중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에 참가하였다. 1920년에 실시된 양산 부부총의 발굴조사에 참가하여 실질적으로 조사를 주도하였으며 보고서 작성도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작성된 도면의 수준은 대단히 높다. 1921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방토목부 겸 학무국에서 근무하였으며 1923년에는 박물관의 물품출납 검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부터는 세키노 다다시가 주도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8의 편집을 보조했으며 이후 1934년에 발간된 『조선고적도보』 14까지의 편집과정에서 게재할 유구와 유물 사진을 선별하고 정리한 정황이 확인된다(關野貞硏究會, 2009). 1930년 무렵에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로 배속되며 1936년에 철도국의 공영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때부터 수덕사 대웅전의 수리, 화엄사 각황전과 장안사 사성전의 수리 공사를 감독하는 업무를 실시하다 1944년에 퇴직하였다(出版科學硏究所, 1987).
광복 후에 일본에서 문화재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였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1947년에 큐슈의 후쿠오카현의 촌장으로 당선되었다가 1950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한반도의 고적조사사업에 관여하면서 남긴 다수의 도면과 사진자료는 현재 일본 교토대학 공학부 건축학연구실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자료는 1994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일괄하여 보고한 바 있다. 오가와 관련 자료는 일본 사가현의 나고야박물관에도 다수 보관되어 있음이 확인되는데 아직 국내에 전부 소개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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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게이키치 자료번호 : ku.d_0003_003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