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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노모리 겐

노모리 겐[野守健]은 1887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했다. 고적조사 사업을 주도했던 세키노 다다시의 친동생으로 태어났는데 노모리[野守] 가(家)에 양자로 입양되어 성이 바뀌었다. 원래 서양화가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취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생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형 세키노의 권유로 1916년부터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촉탁이 되어 총독부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圖 2_노모리 겐[野守健]
그 후 1916년도에 실시된 낙랑 고분의 조사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평양지역의 고구려와 낙랑 유적의 조사를 주도한 ‘세키노조사단’의 중요한 일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당시에 배운 실측과 측량 기술을 바탕으로 낙랑토성 주변에 산재하는 낙랑 고분의 분포조사를 전담하고 지역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한 정황이 확인된다. 경상북도 달성군의 달서고분군 조사에서 중요 멤버였으며 공주 송산리의 백제 고분 발굴조사에도 참가하였다. 1930년도에 실시된 평양 오야리 낙랑 고분의 발굴조사에서도 다수의 고분에 대한 현장조사를 도맡았으며, 1937년에 실시된 강동군 만달산록의 고구려 고분의 발굴조사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오바 쓰네키치와 마찬가지로 그림에 조예가 있었던지라 각종 도면의 작성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도자기 연구에도 힘을 쏟아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고려·조선시대 자기를 폭넓게 관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요지에 대한 현장조사의 기회도 얻게 된다. 1927년도에 실시된 계룡산의 자기 요지에 대한 조사를 주도적으로 실시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유일한 자기 요지에 대한 종합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시대의 자기를 중심적으로 다룬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15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친형이면서 편집책임자인 세키노 다다시를 도와 사진자료의 정리와 선별을 도와준 정황이 확인된다. 1944년에는 『고려도자의 연구(高麗陶瓷の硏究)』라는 단행본을 작성하였다. 그는 1945년에 총독부를 퇴직하고 중국 동북의 장춘으로 건너가서 체류하던 중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어 일시 고립되는 신세로 전락하나 1946년 8월에 큐슈의 오이타[大分]현으로 귀국하였다(出版科學硏究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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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리 겐 자료번호 : ku.d_0003_0030_0020_0020